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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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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목사] 더불어 함께 드리는 예배 공동체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담임)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개척을 준비했던 우리는 “말씀과 삶을 나눔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라는 나눔교회의 비전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과연 그 교회는 어떤 모습의 교회가 될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비전’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장차 어른이 되면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과 같은 거지요.
그래서 그려본 첫 그림이 바로 “더불어 함께 드리는 예배 공동체”였습니다. 예배 드림이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라는 거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거지요.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를 바라볼 때 모두 한결 같은 형제와 자매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사회적 신분, 경제적 차이, 교육적 우열, 세대 차이를 극복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을 한 무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형제 자매이기에 서로서로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공동체’입니다.
나눔교회의 첫 예배 때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 가정집 거실에서 청소년 사역자 가정과 우리 가정을 포함해서 일곱 가정이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예배를 드리기 전 약 이 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 개척을 위한 준비 모임을 하면서 팀웍이 어느 정도 다져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첫 예배 준비로 분주하면서도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한 구석에 처박힌(?) 채 쪼그려 앉아있는 내 자신을 보았지요. 왠지 모를 답답한 느낌이 밀려오더군요.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첫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럴게 마음이 무거운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더라구요. 그 바람에 첫 예배 설교를 겨우겨우 해냈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나는 예배 준비 대신에 집안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처음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레스비 공항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선교지에 도착했기에 새로운 땅에 대한 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비행기 문 밖 트랩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그 기대감은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내 속을 파고들어온 것은 ‘아, 나 이제 어쩌지? 왜 선교사가 되려고 했지? 잘못 정한 것 같다’는 당혹감과 중압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교사라는 작자가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자책감도 밀려오더군요. 그런데 그와 비슷한 감정이 교회 첫 예배 때 데자뷰가 되어 나를 압박해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처음 드리는 예배에 눈에 띄는 장면은 부모 손에 억지로 끌려 나온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춘기 아이들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이민교회에 당연히 있어야 할 EM(English Ministry) 예배가 없이 모두 한국어로 드려야 하는 KM(Korean Ministry) 예배가 그들에게 마땅치 않았던 것 같더군요. 가뜩이나 영어든 한국어든 예배란 것에 그리 관심이 없는 아이들인데, 어른과 함께 예배드린다는 게 고역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의 태도에 부모들의 신경이 모두 곤두설 수밖에요. 아이들의 불량한(?) 태도는 그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통로였던 것 같았습니다. 대놓고 누워서 코고는 아이, 창밖만 쳐다보는 아이, 부산을 떠는 아이, 등등 부모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 때문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경고의 신호를 부단히도 보내고 있더군요. 그래서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예배에 집중하자고 설득하면서 첫 예배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부모와 아이들이 그동안 서로를 모르며 신앙 생활을 했던 거였습니다. 세대별로 예배를 드릴 때는 몰랐던 것이 함께 하면서 보게 된 거지요. 세대 간에 존재하는 차이가 현실로 다가오는 첫 예배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대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사회적 신분 간의 갈등도 심각합니다. 지역 간의 갈등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어진 집단 이기주의가 한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것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 병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집단을 조화롭게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갈등을 풀어가는 수고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거지요. 하지만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 처음부터 갈 길이 멀다는 게 느껴지는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십대 아이 두 명이 교회에 왔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아이들이 그 두 아이를 너무나 싫어하는 거였어요. 그 두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던 거였지요. 그래서 그 두 아이가 온 것을 보고서는 자기 부모들에게 그 두 아이가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더군요. 그렇게 안 하면, 교회 나가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아이들이 이런 갈등 관계를 풀어가는 법을 배우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였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대화하면서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을 연습하자고 부모들을 설득한 거지요. 감사하게도 부모님들이 나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청소년 모임에서 처음에는 서로 등을 돌리고 있던 아이들이 수 개월이 지나면서 그 상처의 앙금을 걷어내고 함께 기도하더군요 한 아이가 집에 전화를 해서 부모에게 그 아이들과 화해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모습이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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