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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5월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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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렬 목사] 문제가 기회가 된 사람

기영렬 목사(달라스 드림교회 담임)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영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대장장이여서, 어린 나이부터 일을 배우다 보니 겨우 초등학교 만 졸업할 수 있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장성하여 기독교인 여성과 결혼하며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부인은 혼숫감 대신 ‘폭스의 순교사’ 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짐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후 그는 주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정적인 전도자로 살았다.
하지만 허가 없이 집회를 한 혐의로 12년 동안 투옥되었다.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제외한 기독교 교파를 탄압했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아픔의 공간이었던 감옥에서 그는 자서전 ‘은총의 넘침’을 썼다. 그리고 역대 신앙 서적 가운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천로역정’을 기록했다. 그가 바로 존 번연이다. 이 책은 저자의 생전에 1판에 1만 부씩, 전체 11판까지 인쇄되었다.
아이러니 한 이야기지만 번연이 감옥에 투옥됨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천로역정’ 이라는 명작을 얻게 되었고, 신앙에 큰 유익을 얻고 있다. 번연에게 있어서, 12년의 감옥생활은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것은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축복의 기회가 된 것이다.
신약성경은 전체가 27권이다. 그 중 13권이 바울서신인데, 네 권이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옥중서신이다. 감옥에서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가 된 상태에서 쓴 서신이다. 아픔이 진주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고난을 싫어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예외가 없다. 고난은 사람들을 넘어지고 쓰러지게 한다. 하지만 이를 발판 삼아 역사를 바꾼 사람들도 많다. 오늘날 우리는 종류는 다르지만 다양한 형태의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질병으로 말미암은 고통, 가족 간의 관계, 재정적 어려움 신분의 문제, 교회에서의 갈등 등 숫자를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난이 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은 진주가 될 수 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여인이 등장한다. 혈루증은 만성 하혈증이다. 대부분 여성은 규칙적으로 생리하는데, 혈루증은 하혈이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는 생리대도 없었고 샤워시설도 없었다. 물이 귀한 지역이니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영적인 문제였다.
구약성경 레위기 15장을 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졌고, 격리되어야 했다. 앉은 자리도, 만진 사람도 부정해져서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했으니 그 고통의 무게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도 네팔에는 차우파디라는 힌두교 관습이 있다. 서부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악습인데 여성들을 생리 기간에 부정하게 여겨 격리시키는 이상한 관습이다. 매해 몇 명씩 이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다 보니 한국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의사를 통해 더 큰 괴로움을 당했다. 병 치료는커녕 있는 돈마저 모두 날려 버리고 말았다. 의사들은 그녀의 병을 이용해서 재물을 갈취한 듯하다. 여인은 절망과 아픔의 상태에 던져져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통 속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육신의 치료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도 선물로 받게 된다. 문제가 축복의 도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문제 속에서 축복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예수님은 수많은 인파에 휩싸여 길을 가고 있었다. 모두 문제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길을 가며 예수님과 몸을 부딪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옷가를 간신히 만졌던 그 혈루병 여인만 문제가 해결되었다.
여인이 만졌던 예수님의 옷은 정확히 말하면 옷이 아니라 옷술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명령 한대로 옷 끝에 옷술을 달고 다녔다. 파란색과 흰색 실을 꼬아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을 부정하다고 생각한 이 여인은 차마 예수님의 옷을 만질 수 없어 조심스럽게 그의 옷술을 만진 것이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군중과 다르게 여인에게는 남들에게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믿음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믿음이었다. 이것이 그녀를 축복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교회를 다닌다 해도 모태신앙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통해 삶의 변화와 축복을 경험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께만 문제의 해결이 있고 구원이 있다고 믿는 절실한 믿음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와 부딪히는 수많은 군중이 아닌 믿음으로 옷 술 가는 만지는 여인을 감지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의 시선은 그런 사람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이 문제 속에서 더 큰 축복의 보화를 발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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