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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5월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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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김철기 선교사] “아마존 땅에 영원한 꽃을 심다”

1991년 김철기 선교사는 인디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브라질 아마존으로 들어왔다. 먼저 떠난 선교동지이자 아내인 허운석 선교사를 2013년 아마존에 묻고 오늘날까지 사역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아마존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곳, 살기 좋은 곳이 아닌, 좋아하지 않는 곳, 살기 어려운 곳, 끊임없이 자신을 주님께 드리며 주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곳, 아마존에서 주님을 나누는 선교사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김철기 선교사

Q. 김철기 선교사

A. 오래 전, 우리 내외는 두 아이와 함께 아마존에 왔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장성해서 아마존을 떠났고 아내는 여러 해 전 본향으로 돌아갔다. 나만 이곳에 남았다.
나는 선교사가 되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아마존 선교사가 되어 평생을 살아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선교사가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

Q.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계기

A. 신대원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목사고시를 준비했다. 그때 인도로 선교 훈련을 다녀온 한 목사를 만났다. 그는 끊임없이 인도의 비참한 모습과 복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해 줬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함께 선교훈련을 갔던 신학생들 중 몇 명이 인도 선교에 헌신 했나요?”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홀로 누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도에 선교사가 필요한데,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나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곧 ‘왜 나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선교사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들이 가야지!’ 그러나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우고, 새벽녘 ‘주님, 제가 선교사 되는 것을 바라십니까? 그럼 되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마음으로 고백하고 잠이 들었다.
이 밤의 사건이 결국 인도에서, 아마존으로 바뀌고 아내 허운석 선교사의 허락을 얻어내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다.
이윽고 1990년 가을 신촌장로교회 창립 35주년 기념 선교사로 입양되어 세계선교부 파송을 받아 아마존에서 33년을 지내고 있다.

Q. 녹색의 지옥

A. 미국인들이 아마존에 붙인 이름, 녹색의 지옥(Green hell)이라고 붙여진 아마존은 아름다운 지옥이다.
아마존의 폭염과 폭우, 높은 습도, 많은 독충들은 하나님이 아마존을 보호하시는 방법이다. 덕분에 아마존은 지금도 여전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아 있다.
1997년에 개교한 아마존 검은 강 상류 신학교는 우리의 가장 주된 사역이다. 소명감이 있는 인디오 청년들을 초대하여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아마존 검은 강 신학교는 초교파 신학교이다.
1996년부터 시작한 의료사역도 초교파 사역으로 진행한다. 의료혜택이 미치기 어려운 인디오 마을들을 찾아가 도움을 준다.
아마존은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아마존은 이런 여러가지 악조건들로 매일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주님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도움으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주님 오늘도 당신의 도움으로 하루를 살아내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매일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고 있다.

김철기 선교사가 브라질 인디오 남성에게 침례를 주고 있다.

Q. 회개와 부흥

A. 1999년부터 우리는 선교지에서 심한 영적 메마름을 느꼈다. 이 영적 갈증은 아마존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부흥은 회개운동을 통해 찾아왔다.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자매가 숨겨 왔던 죄를 고백했다. 자매의 고백을 통하여 모든 자매가 죄악을 낱낱이 자백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신학교 남학생들의 죄들이 드러났고, 그들은 꼼짝 없이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 신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주님을 만날 자리를 찾기 위해 정글로 들어갔다. 남학생들은 오른쪽으로 여학생들은 반대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들은 정글 속에서 목소리를 다해 죄를 토했다.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온 정글에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이런 회개운동 후에 주님은 당시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신학교 가족 60명 전원에게 성령체험을 주셨다. 성령께서 친히 일으키시는 회개운동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불신자들이 금요일 철야예배를 구경하러 왔다.
성령님이 일으키신 회개운동은 2009년 9월부터 12월까지 불타올랐다. 강력한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난 후, 우리가 이 도시에 거주한 15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망고나무들과 다른 열매들이 풍성하게 열렸다.
역대하 7장 14절의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부흥을 꿈꾸며 회개하는 성도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통하여 황폐한 우리 심령과 땅을 바꾸어 주신다고 믿는다.

Q. 허운석 선교사

A. 아내 허운석 선교사는 하나님과 인디오 형제들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 여인으로 불꽃같이 타올라 끝까지 신실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2006년 3개월 안식년을 마치고 11월 초에 돌아오려는 때에 건강검진 중 폐암이 발견됐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폐암 2기로 50%는 5년 후에도 생존이 가능하다”며 “아마존에 돌아가지 말고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허 선교사는 자기 목숨보다 인디오 형제들을 더 사랑했기에 6개월 후 아마존으로 돌아왔다.
2010년 말기암으로 통증이 극심했다. 그런 와중에 교회로부터 설교초대를 받으면 흉관을 삽입한 채 수십 알의 모르핀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했다.
주님께로 돌아가는 날, 허 선교사는 평생 사랑했던 형제들이 있는 아마존에 묻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허 선교사의 유언을 따라 아마존에서 한 줌의 재를 매장했다.
도시의 시의회에서 허 선교사의 공적을 인정하여 교회 앞 큰 대로를 ‘허운석 선교사로’라고 이름을 변경해 줬다. 허 선교사가 주님께로 돌아간 지 11년이 지났다. 우리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노라면 허 선교사의 사진이 그들 가족사진 옆에 자리하고 있다.

허운석 선교사가 브라질 인디오 아이들에게 찬양을 불러주고 있다.

Q. 아마존에서 얻은 깨달음

A. ‘종교적 야망’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생명의 주님을 버리고, 내 거룩한 야망을 따랐다.
그것이 야망일 뿐임을 알아차린 것은 아내 허 선교사가 곁을 떠난 뒤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아마존 인디오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허 선교사는 암 수술을 받고 “이제 좀 쉬고 싶으니 사역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때 허 선교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가슴 속에 깊은 회한으로 남아 두고두고 통곡하게 한다. 사역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산타이사베우와 바르세우에 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종교적 야망에 눈이 어두워, 주님을 선교 사역으로 오해하고 주님을 대적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장 23~24절 말씀이 복음의 찬란한 빛으로 이해되고 그런 과정 또한 필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Q. 독자들에게 전하는 권면

A.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고 일하는 장소가 보냄을 받은 선교지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골 골짝 빈들에도 소돔 같은 거리에도 가겠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께만 드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기쁘게 지겠습니다’라고 찬송을 부른다.
이 찬송이 우리의 진실한 고백이라면 우리가 복음 전도자로서 세상에서 많이 잃어버릴수록 감사한 것이다. 어느 순교자가 고백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유한한 것을 잃어버림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Q. 덧붙이는 말

A. 한결같은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해준 신학교 가족들과 우리 교회 성도들, 인디오 마을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지금까지 우리를 돕고 협력한 선교동역자들에게 어떤 언어로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주님께서 만 배나 복을 더하여 주시고, 혹여나 우리가 상을 받는다면 모두 선교 동역자들에게 돌리고 싶을 뿐이다.
저녁이라도 신학교 곳곳에 여러 색깔의 꽃들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 내외가 꽃을 좋아해 신학교 내에 꽃을 많이 심었다. 꽃을 심으면 대개는 더위와 습도 때문에 잘 피지 못했다.
꽃을 심을 때 기뻐했던 것처럼 사역지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복하고 기뻤다.
29년간의 사역 동안 어떤 형제들은 우리의 사랑을 받고 꽃을 많이 피우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다. 그러나 더러는 우리를 이용하고 배신하고 고통을 주고 떠났다.
머지않아 정년이 되어 젊은 선교사에게 사역을 물려주고, 주님께 돌아갈 것이다.
주님께 돌아갈 때, 나는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꽃을 심을 때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가 사랑할 때 기뻤던 그 기억, 그 행복한 추억만 갖고 가려고 한다. 오늘도 나는 기쁘게 꽃을 심는다.

김영도 기자 © T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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