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성도를 맨 앞자리로

80년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중 하나가 “월튼네 사람들(The Waltons)”입니다. 1930-40년대 미국 시골 동네의 대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경제 공황기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던 시기를 한 가족 공동체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훈훈한 드라마입니다. 이 가족은 3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입니다.
나는 80년대 초 미국에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개인주의와 핵가족 중심인 미국 사회에서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빠한테 야단을 맞은 초등학생 아이가 아빠에 대한 불만을 털어내는 걸 빙그레 웃으며 들어주는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는 토닥이며 아이를 달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지요.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할아버지가 채워주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따뜻한 가정의 유대감이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든 거지요. 그냥 견딘 게 아니라, 건강하게 견딘 거지요.
지금 이 시대도 월튼네가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다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삶이 모두 불확실합니다. 어떤 재난이 닥칠지, 어떤 고통이 밀어닥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언제 일자리가 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깜깜한 시대를 사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과연 우리가 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핵가족이 대세인 이 시대, 더구나 그 핵가족마저도 해체되면서 더욱 개인주의에 매몰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이혼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혼했다는 것 때문에 그늘에 숨어버리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교회가 전통적으로 이혼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이혼한 지체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함께 남겨진 자녀가 가슴에 묻은 상처와 홀부모 밑에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성정체성 문제 등을 홀부모 혼자서는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확대가족으로서 교회 공동체 식구들이 홀부모와 그 자녀들의 가족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됩니다. 아이에게 삼촌이 되어주고, 언니 혹은 형이 되어주어서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확대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통합예배를 선택한 겁니다.
우리는 영아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아이들이 칭얼대기도 하고, 크게 울어 제끼면 예배에 집중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를 그대로 안고서 예배실 문을 향해 거의 달려가듯 합니다. 그래서 영유아의 부모들은 예배실의 맨 뒤쪽 자리를 선호하게 되지요. 여차하면 얼른 예배실 밖으로 튀어나갈 차비를 하는 거지요. 자기 아이 때문에 예배가 망치는 것 같을 때, 젊은 부모들이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게다가 그게 자녀 교육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으로 비쳐질까봐 신경도 엄청 쓰이겠지요.
게다가 요 시기의 아이들은 무척 호기심이 많아서 막 걷기 시작하면서 단상으로 올라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아이, 드럼을 두드리는 아이도 있지요. 잠시 설교에 집중하는 사이에 옆에 있던 아이가 어느새 단상 위로 올라간 걸 발견한 엄마아빠는 당혹스럽습니다. 올라가서 아이를 데리고 올 수도 없고 그대로 둘 수도 없어서 아주 진퇴양난이지요. 유치부에 다니는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느라 정신을 집중하다가 신이 나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러면 부모들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내느라 설교 집중은 물 건너 가버립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처음에는 유초등부 아이들을 어른 설교 전에 단상으로 불러내 앉혀 놓고 어린이 설교를 5분 정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어린이 담당 교역자가 전담하는 대신에, 이 설교를 할 수 있는 자원자들이 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 설교를 하고 나면, 아이들은 주일학교 교실로 가서 거기서 부모들이 조를 짜서 감독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우선 자원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지요.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어린이 설교가 10분에서 15분으로 늘어지는 바람에 예배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게 되더군요. 예배 시간이 길어지는 게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에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정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불필요하게 길게 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이 설교를 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따라서 예배실 밖으로 나가서 교실에서 잡담하는 거였습니다. 예배실 밖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설교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 걸 발견하게 된 거지요. 예배 때 조용한 분위기는 확보했는데, 문제는 예배를 상실하게 된 거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결국에는 모두가 다 예배실에 있는 걸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어수선함 때문에 되겠느냐는 반론이 있었지만, 설득을 해서 모두 함께 드리는 예배로 결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