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목사] 직분자를 위한 은퇴 준비 세미나

– 믿음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

정년을 맞아 은퇴를 하고 나면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아침 저녁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자유인이 되었다는 일종의 해방감을 갖게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게 되면 마치 방학을 맞은 학생처럼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는 은퇴자들을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을 일에 갇혀서 꼼짝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실컷 다녀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일본으로 유럽으로 중남미로 거침이 없다. 이런 은퇴자들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아무런 염려도 근심도 없는 은퇴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이런 여행도 자유도 한계가 오는 것을 본다. 시간이 지나면 여행의 감흥과 흥분도 점차 시들해지고 오히려 일상의 평안함을 찾는 은퇴자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가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하고 특정한 일과도 없이 돌아가는 무료한 일상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염려 섞인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 은퇴자들의 고백이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차분해지게 되면 아주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바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직책과 타이틀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회장님’ ‘팀장님’ ‘사장님’ ‘교수님’과 같은 호칭들이 나를 대신해주고 있다. 그런데 현직을 떠나 은퇴자가 되고 나면 이런 직책들이 떨어져 나간다. 물론 자신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라면 예우 차원에서 여전한 호칭을 쓰겠지만,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면 자신을 누구라 소개할 지 어색해진다. 한국 문화는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아니라 타이틀과 직책을 부르는 문화다. 그러다보니 은퇴 이후에 겪는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대표할 호칭과 직책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를 대신할 호칭과 직책을 잃고 나면  ‘나는 정말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은퇴자 혹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인생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가 된다. 특히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혹은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답은 이것이다.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있다. 싱거운 답변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됨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자기 정체성’의 출발점이며 본질이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 은퇴자가 되었다면 혹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그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를 대신하던 모든 호칭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초점을 다시 맞추는 시간이라고 하겠다.

이 질문과 답변은 은퇴 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현직에 있는 동안 우리들의 관심은 경쟁과 생존의 논리에 묶여 있었다.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이끄는 생활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살았다. 나를 불러주는 호칭과 직책이 ‘나’인줄 알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그 동안 살아온 환경 자체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환경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은퇴자가 된다면 이것은 참된 자기를 발견하고 진리와 생명을 따라 사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정체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이것은 대단히 영광된 신분을 말해주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지위나 직책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고 영예로운 신분이다. 요즘 미국 상황을 보면 이민자에 대한 심문과 단속이 심해지면서 미국 시민권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미국 시민이 되면 ‘미국과 자신과의 관계’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이건,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건 아니면 학생이건 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자신과의 관계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냐”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 안에 사는 사람들의 첫번째 질문이 되어야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게 된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됨’이 가장 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신분임을 확신하는 사람이 참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은퇴의 시기는 ‘하나님의 자녀됨’에 집중하는 시기라고 하겠다. 그동안 나를 포장하던 모든 직책과 호칭을 떠나 오롯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 되기에 자신의 모든 관심과 열정을 쏟는 복된 은퇴의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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