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끼치는 자식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잠 10:5)
여기 “부끄러움을 끼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원형(보쉬)은 ‘부끄럽게 되다’(to be ashamed), ‘낙담하게 되다’(to be disappointed), ‘당황하게 되다’(to be perplexed)는 뜻으로 어떤 이유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어떤 일의 실패로 인하여 자신이나 타인이 수치를 당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자식의 행동으로 인하여 부모가 당황스러운 혼란 상태에 빠지고, 수치스러운 불명예를 당하고, 낙심하게 되는 경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플핏(Pulpit)주석에서 이런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행복하게 혹은 비참하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녀가 부모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불행스럽게도 자녀들은 그것을 가장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불행하게도 큰 이기심이 자신들의 애착심에 빠져서 철저한 무관심을 불러 일으켜서 자신들로 인해 남에게 가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해서 부모님의 입장과 기분, 자식을 향한 기대감을 짓밟아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노년의 부모님의 기쁨과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직 자신들의 입장과 감정만 따라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부모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고 눈물로 세월을 지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 19:26)
인간성 훈련과 교육의 실패가 부끄러움을 끼치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식을 쌓고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다 할지라도 ‘인간 됨됨이’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면 부끄러운 자식일 뿐입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정웅 씨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툭 차면 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찬스라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축구선수에게 ‘골인’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자기 편이든 상대 편이든 선수가 넘어졌다고 바깥으로 공을 차버리라는 것은 정말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의 이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득점왕보다 좋은 인품, 훌륭한 인간성 때문에 칭찬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자식의 훌륭한 모습 때문에 그 아버지가 명예를 얻고 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주님! 나는 어떤 자식입니까? 얼마나 부모님의 기쁨과 행복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 We build people 김성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