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에서 회중이 기도하기 전에 함께 “주여!”를 외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외국의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모습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사회자가 “우리 ‘주여’ 한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회중은 “주여!”를 큰 소리로 외친 후 일제히 기도를 시작합니다. 특히 “주여”를 세 번 외치는 것을 이른바 “주여 삼창”이라고 합니다.
“주여”라는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주여”는 “주인님이시여”라는 뜻으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직접 부르는 호격 표현입니다. 성경에서도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이나 간절한 필요 가운데 “주여”라고 부르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시 86:3) 하고 간구했습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마 14:30). 따라서 “주여” 자체는 성경적인 기도의 표현입니다.
“주여”라는 외침은 회중이 각자의 생각을 잊고 한마음으로 기도제목과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돕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주여”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큰 소리로 기도하는 통성기도에서 회중의 기도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주여”를 반드시 외쳐야 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세 번을 외쳐야 한다는 명령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여”를 외치는 것을 기독교 예배의 필수적인 요소나 성경적 규례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주여”를 외치는 것은 신학적 가르침이라기보다 공동체적 기도를 위한 하나의 방식입니다. 특히 “주여 삼창”을 설명하는 데 있어 “세 번”이라는 숫자를 삼위일체와 직접 연결하여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성경의 중요한 교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여 삼창”이 삼위일체에서 비롯되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에 중요한 표현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사례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사야 6:3에서는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 4:8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반복 표현을 근거로 “주여”를 세 번 외쳐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거룩하다”의 반복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을 강조하는 문학적, 예배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이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단 9:19)라고 기도한 데서 “주여 삼창”이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주여”는 호소, 두번째 “주여”는 용서, 세번째 “주여”는 응답의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개인적인 해석과 의견일 뿐,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여 삼창”은 “만세 삼창”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세 삼창”은 중국 한나라 때, 백성들이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세(萬歲)”를 불렀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만세 삼창”은 1889년 일본 제국헌법공포 기념식에서 천황을 환호하기 “만세”를 세 번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국은 3.1운동 때부터 “만세”를 삼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여”를 크게 많이 외치는 것을 신앙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주여 칠창”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여”를 얼마나 크게, 몇 번 외쳤느냐가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과 그 뒤에 이어지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셔들였는지가 중요하고, 자신의 쾌락이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는지가 중요합니다(약 4:3).
기도의 응답은 기도자의 열심이나 열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6:7에서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8:21-29에 바알 선지자 450명이 갈멜산에서 바알에게 광적인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기후와 농사를 주관한다는 바알을 향해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뜨거운 기도는 공허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자의 외침의 크기나 빈도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주여”라는 외침이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부르짖음의 표현이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주여”를 외치는 행위 자체에 특별한 영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를 아무리 외쳐도, 주의 이름으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2-23)는 냉엄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주여”는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 형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잘못된 관행이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기도 문화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공동체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주여”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그분께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