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문 목사] 로뎀 나무 아래서 (부제: 참된 신앙)

저는 “로뎀 나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하던 사무실 바로 옆에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카페 이름이 “로뎀 나무”였습니다. 그 카페에 한 번인가 들어가 봤는데 카페 안 한쪽 벽 전체에 큰 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 평화롭게 누워서 책을 읽는 아이가 있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로뎀 나무”는 늘 평화로운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이스라엘 광야 지역에서 자라는 로뎀 나무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볼품 없는 1-1.5m정도의 작은 관목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앉았던 로뎀 나무는 제가 기억하는 그런 평화로움이 아니라 전혀 평화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마주한 나무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 다 모아놓고, 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바알 제사장들 450명, 아세라 제사장들 400명과 850:1 운명의 한판 대결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엘리야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왕상 18:39)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 전부 제거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이세벨은 바알 숭배를 국가의 공식 종교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지었고,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를 양성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탄압하고 학살했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이점이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이 부분을 해결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승리한 다음에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엘리야의 믿음과 다르게 이세벨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멜산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다음에도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고 여전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허탈감이 몰려왔을 것이고 그 허탈감은 두려움이 되어서 몰려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세벨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가장 먼 곳으로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감정적 감동과 영적 회개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온 사건은 갈멜산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왕상 18:39)라고 외치며 땅에 엎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기들 죄를 깨닫고서 나온 전인격적인 반응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느끼는 공포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언약 안에 있는 믿음의 당사자가 아니라 갈멜산이라고 하는 무대 위에서 싸우는 엘리야 대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간 대결을 관람하는 구경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승자에게 환호를 보냈을 뿐이지 그 대결이 이 사람들의 믿음,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감정은 외부 자극이 강할 때 폭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자극이 사라지게 되면 순식간에 바로 식어버립니다. 불이 내리던 순간의 그런 감동은 산을 내려가는 길에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현실의 생계와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마음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범죄한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과 우상을 버리는 구체적인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놀랐을 뿐이지 자신들이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살아온 죄를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집회나 찬양 가운데 강렬한 음악이나 뜨거운 분위기, 감동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적 고조를 경험할 때 “은혜 받았다” “변화됐다”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예배당 문을 나선 다음 우리 삶의 습관, 돈을 쓰는 방식,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영적 회개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 소비에 불과합니다. 자극을 좇는 신앙과 감정적인 자극에만 의존하는 신앙은 더 큰 기적이나 더 강력한 감동만을 계속해서 요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는 과정에서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사건들을 체험한 다음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처럼 자극에 기반한 신앙은 절대로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홀로 서서 우리 우상들을 부수는 작고 조용한 순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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