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하나님이 계신 집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성경에는 실제로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집인 성전을 무너지도록 허용하시는 장면입니다. 성전은 역사 속에서 두 번 무너집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그리고 서기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까지 재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전이 무너진 이유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백성이 죄를 지을수록 성전이 더욱 견고히 서서 오히려 경각심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너지는 성전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저렇게 놔두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신앙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시편 74편은 그 파괴의 순간을 생생히 그립니다. 원수들이 성소 한가운데서 소리치며 깃발을 세우고, 도끼와 철퇴로 조각품들을 부수고, 하나님의 처소에 불을 지릅니다. 표적도, 선지자의 음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저자는 그 폐허 앞에서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기르시는 양 떼에게 진노의 연기를 내뿜으시나이까.”
하지만 이 무너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신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성전이 더 견고하게 서 있었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 건물 자체를 의지하며 진정한 회개 없이도 안심했을 것입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백성이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은 자신이 거하시던 자리를 스스로 허무심으로써 그들을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며 “잘못 가르친 내 탓이다”라고 말할 때, 아이가 오히려 더 큰 아픔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전이 곧 하나님 자신과도 같았기에, 그 무너짐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백성을 돌이키려 하신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온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삶은 그 거룩함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올렸지만, 마음으로는 우상을 함께 섬기며 회개할 뜻조차 품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벨론의 침공을 통해 그 심판을 이루셨고, 성전도 함께 허물어졌습니다. 이방인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수모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신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심판과 파괴로만 보였던 그 순간이,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는 더 온전한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본질이 아니라, 집을 사기 전에 둘러보는 모델하우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델하우스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도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는 집은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지어질 진짜 집을 미리 보여줄 뿐입니다.
하나님은 돌로 지은 성전 대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참된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스스로 성전이 되어 성전을 허무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건물을 떠올렸지만, 요한복음은 그것이 “자기 육체”,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밝힙니다. 성전의 무너짐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흔적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헤롯 성전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인 서기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실제로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와 계셔서, 이제는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미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적지 않은 현금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대신 전달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잠을 자도 불안하고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가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그때 깊이 실감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약함을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곧 성전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