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엽 목사] 예수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15)

이정엽 목사. 달라스 뉴비전교회 담임.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8단계 기쁜 소식> (CLC 출판사).

예수님을 믿기 전의 나는 누구였는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 2:1)라고 말씀하고 있다. “허물”과 “죄”는 한 마디로 “죄”를 뜻한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두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이다. 그래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 14:23)고 말씀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는 다 죄인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나의 신분은 죄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 14문에서 “죄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에 부족하거나 그 법을 어기는 행위이다”고 하였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함도 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죄는 불법이라”(요일 3:4)고 하였고,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고 하였다. 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고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며, 존재 자체로 보나 실제적인 우리의 마음과 삶을 볼 때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이것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우리의 상태와 수준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현주소이다.

그리고 죄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데, 바로 사망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라고 선언하신 대로 범죄한 아담에게는 죽음이 왔다. 로마서 6:23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였다. 죽음은 죄 때문에 온 것이다. 죽음은 일반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죄는 사람을 영적으로 죽게 만들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죽은 자들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스스로 찾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알거나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다시 살아난 자들이다. 죽었던 자들이 다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무덤을 박차고 부활한 자들이 아니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엡 2:4).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깨달으며, 알거나 찾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 전혀 기여할 수 없었던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난 것이다. 죄로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그 크신 사랑을 갖고 구출해주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드리기가 쉽다. 이전에는 예수님을 몰랐었는데 이제 알게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착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가 되어서 예수님을 믿었고, 이해가 안 되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던 것인가? 아니다. 구원은 이해와 납득과 도(道)를 깨우치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해하고 깨닫고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갈 만한 수준과 상태에 있었던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죄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감히 그것을 엄두도 못내는 자들이다. 죽은 송장이 깨닫거나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처럼 득도(得道)의 종교가 아니다. 어떤 도(道)를 깨우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게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과 능력과 노력을 기초로 출발한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인간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죽은 자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상태에 있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 크신 사랑을 베푸셔서 살리셨다, 구원해내셨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유일하고 배타적이고 확실하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출발하신 것이기 때문에 도중에 하차가 없고, 포기가 없고, 끝까지 인도하시며 목적을 이루시고야 마실 것이다. 그래서 은혜이다! 감사와 찬양이 있다! 확고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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