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세우기=잠언 묵상

선택의 기로에서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잠 9:16)

본 절의 말씀은 4절의 말씀과 내용이 똑같다고 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4절에서는 지혜로운 여인이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부르는 초청의 말로 사용되어졌고, 16절에서는 음란하고 미련한 계집이 자신의 바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부르는 초청의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리로 돌이키라”(4절)
“이리로 돌이키라”(16절)
똑같은 내용, 똑같은 어투, 똑같은 방법으로 큰 소리를 치며 부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르고 초청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이리로” 라는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한 쪽은 지혜가 생명을 얻게 하고 명철의 길로 행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부르는 것이고(6절), 다른 쪽은 미련한 계집이 미혹하여 사망의 자리로, 음부의 깊은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하여 부르는 소리입니다(18절).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岐路)에 서게 됩니다.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지혜를 선택할까 미련을 택할까, 생명의 길을 택할까 사먕의 길을 택할까… 우리에게는 수없이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도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30:15)라며 선택의 기로에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 “지혜 없는 자”이니, 충분히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잠언 묵상을 통하여 분별력의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지혜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지혜를 선택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어떤 길이 내가 걸어가야 할 참 길인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유대인 연구 학자로 유명한 테시마 유로 박사의『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에서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탈무드를 인용하여 부자의 줄에 서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부자의 줄 맨 끝에 서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줄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보다 실제로 더 부자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부자의 줄에 서는 것이 낫다. 부자의 마지막 줄에 선 사람은 부자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지만, 가장 앞줄이라도 가난한 사람의 줄에 서 있으면 가난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돈이 없더라도 부자의 줄에 서서 부자의 지혜를 얻게 되면 돈은 곧 따라오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중에 세계적인 부자가 많은 것은 어려서부터 이런 부자의 지혜를 배우고 익혔기 때문이다.”

“주님! 저에게 분별력의 은총을 주셔서
지혜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We build people 김성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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