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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3월 28, 2024

[최승민 목사] 바늘귀를 통과하셨습니까?

최승민 목사
현 플라워 마운드 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에는 동일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보통의 경우는 이 지점에서 이미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큽니다. 구약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여러 계명들을 무슨 수로 다 지키겠습니까?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온전히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부자 청년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가운데 자라며 큰 무리 없이 이타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그러한 계명을 다 지켜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부대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 있게 “어렸을 때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눅 18:21)”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며,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무조건 포기하라고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마 19:21). 그러나 이 청년은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근심하며 돌아갑니다(눅 18:23). 부자 청년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함 없이 자라는 가운데 영생을 사모하며 예수님께 찾아와서 영적인 진리를 묻고 근심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경건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24-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니요?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불가능한 일에 빗대어 설명하고 계십니다. 부자라고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시는 말씀이 공평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구절은 오래전부터 신약의 난해 구절로 꼽혀왔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한 여러 이해의 방법들이 제안됩니다.

다양한 해석 시도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예수님의 말씀을 과장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 가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조금 과장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크게 마음 쓰지 말고, 그냥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도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어느 것이 과장이고 어느 것이 직설인지 독자가 임의로 결정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바늘귀를 다르게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늘귀는 진짜 바늘 끝에 있는 작은 틈이 아니고, ‘바늘귀’라고 불리는 작은 문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역적 배경 정보를 가져와 말씀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이 문은 너무 작아서 일반적으로는 낙타가 통과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낙타가 나름대로 다이어트도 하고 살을 깎아내는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통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부자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면, 갈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낙타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두루마리 필사본을 묶을 때 사용하는 조금 두꺼운 실을 지칭하는 헬라어 단어인 카밀로스(καμιλος)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늘귀에 꿰기 쉽지 않을 정도의 두께를 지닌 이 카밀로스 실을 바늘귀에 끼우는 것만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후대의 성경 필사자들이 낙타를 의미하는 이 카밀로스를 카멜로스(κἀμηλος)와 혼동하여 잘못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언어적인 배경을 동원하여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맞는 해석일까요? 이상의 세 해석 유형 모두 재미있는 해석이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늘귀는 문자 그대로의 바늘귀 자체이며, 낙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부자만이 아니라 그 어느 인간도 스스로를 절제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고 해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죄인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누가 갈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 역시 가졌던 질문이었습니다(눅 18:26).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속이 복잡했던 것이지요.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결국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을 것이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7)” 사람은 자신의 결단으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그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울은 같은 신앙적 교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 사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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