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를 준비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물론 노년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며 미리 저축하는 분들이야 주변에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어떤 면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기 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경제활동의 연속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필자가 말씀드리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물품 정리와 생활 환경 다운 사이징, 유언장 작성, 연명 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 그리고 장례에 관한 준비 등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사실 힘들다. 그래서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워크샵을 마련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고 마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참여율이 저조한 편이었다. 시니어분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분들도 있어서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들은 예고없이 찾아와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했더라면 절차를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일상’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비상’이 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비하지 못한 상황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게 된다. 게다가 본인의 의식이 불명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남은 가족들과 지인들이 본인을 대신해 의사를 결정해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떠안게 된다. 심리적으로 매우 큰 부담을 떠안기는 꼴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70대 후반의 장로님이 의식을 잃었다. 병원 응급실로 모셔가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녀들에게 연락을 취해 타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날아왔다. 여전히 의식은 없고 이젠 호흡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의사들이 가족들과 회의를 요청하였다. 호흡이 어려워 환자 목에 구멍을 내어 호흡 장치를 부착할 방법이 있긴 하지만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 말하였다. 가족들은 난감하였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던 큰아들이 무조건 호흡기를 부착해야 한다는 바람에 결국 시술을 하였다. 그러나 의사의 말대로 환자분은 몇 일 호흡기에 의존하다 돌아가셨다.
그분의 장례를 치른 뒤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그분은 노환이 깊어지고 있었다. 본인도 인식하고 있었다. 잘 걷지를 못하고 평소에도 호흡이 가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길이 싫어서 애써 아닌 척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일어날 위기 상황도 가족들과 상의를 하지 않았다.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러이러하게 처리해달라’는 자신의 의사도 분명하게 말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날 줄 예상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위험 지수는 높아지는 것이다. 극적인 상황을 대비하여 세세한 준비를 하는 것이 지혜로운 웰에이징이라 하겠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삭과 이스마엘 이외 ‘그두라’를 통해 얻은 아들들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렇게 창대해지고 있음을 본다.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사라가 이삭을, 그리고 그두라를 통해 6명의 아들을 얻어 175세를 사는 동안 8명의 아들을 보았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축복이 현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사는 동안 큰 기쁨과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위기 관리에 지혜로왔다. 많은 자녀를 둔 것은 복이기도 했지만 서로 간의 갈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위기도 될 수 있음을 직시하였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약속의 자녀를 통해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야 하기에 이들 형제들 간의 갈등을 미리 예방하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부모로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칫 노년이 되어가며 이런 문제에 둔감해질 수도 있는 아브라함이었지만, 놀랍게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창25:8)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자기 생전에’라는 구절이다. 아브라함이 살아 있는 동안 즉 나이는 많고 노년의 끝자락에 있었지만 자신의 의식이 분명하고 의지가 선명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형제들간에도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방지하는 아버지의 뜻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믿음 안에서 웰에이징하는 마지막 과제와 위기 관리 숙제를 ‘자기 생전에’ 마치게 된 것이다. 삶의 끝자락이 단정하고 간단하다는 것은 복이다. 우리 모두 ‘자기 생전에’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웰에이징의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