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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4월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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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목사] 배경과 더불어 읽는 성경(3)

예수님의 첫 기적이 포도주라니?

최승민 목사
현 플라워마운드 한인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올여름 텍사스는 유난히 더웠습니다. 무덥고 가물었던 여름을 보내며 저는 이스라엘에서 건기를 지내던 때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절은 건기(乾期)와 우기(雨期)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0월 초에 이른 비가 내려서 3~4월에 늦은 비가 내릴 때까지의 기간을 우기, 4월 말에서 9월까지의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시기를 건기로 부릅니다. 대체로 여름이 건기이고, 겨울이 우기인 셈이지요.

건기와 우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북쪽의 찬 바람이 지중해를 통해서 불어오는 시기에는 우기가 형성됩니다. 겨울철이라 하더라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지중해풍은 이스라엘에 큰 축복입니다. 광야에 들풀이 일어나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가 바로 우기이기 때문입니다. 마른 광야라 하더라도 비를 충분히 맞으면 초목으로 뒤덮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광야같이 고생스럽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의 단비를 충분히 부어주시면 더할 나위 없는 풍요로운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아 풀과 꽃으로 뒤덮인 광야의 모습은 감격스럽습니다.

반면에 건기에는 절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남동쪽에 위치한 아라비아 사막을 통과한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우기 동안 많은 비를 맞으며 광야에 솟아난 풀과 꽃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사막 바람에 하루아침에 말라 버립니다. 이러한 자연 현상에 익숙했던 고대의 예언자는 하루아침에 말라버리는 풀과 꽃의 허무함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하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노래했습니다(사 40:8).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건기를 큰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샘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마저도 건기가 길어진다면, 뿜어내는 물의 양이 신통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비가 내릴 때, 지표면에 흐르는 물을 한곳으로 모이도록 물길을 만들고, 땅을 파 물 저장고(cistern)를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물 저장고에 고인 물이 시간이 지나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안에 석회칠을 하여 물의 부패를 막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한다고 해도 생존에 필수적인 물은 늘 부족했습니다. 첫 비가 내리기 전에 물이 동나버리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샘이 있다면, 고생스럽더라도 가서 물을 길어오면 되겠지만, 주변에 충분한 물을 뿜어내는 샘이 없는 지역에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베푸신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갈릴리의 가나로 제시됩니다. 오늘날 가나로 알려진 전통적인 마을은 비잔틴 시대 순례자들의 전통에 근거한 가나 마을(Kfar Kana) 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교회의 전통보다는 물질 증거에 기반하여 다른 가나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어느 곳이 진짜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긴 지면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구자가 아닌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곳이 믿을만한 진짜 가나인가라는 위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일으키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의 신앙적 의미일 것입니다.

비잔틴 시대 전통에 근거한 오늘날의 가나 마을이든, 고고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는 서너 곳의 가나 후보지이든, 가나는 근방에서 쉽게 물을 구할 수 없었던 마을이었습니다. 우기 동안 내린 비를 잘 모아 보관하여 건기를 버텨야 하는 것이지요. 주변에 그럴듯한 샘도 없는 마을에서 건기가 끝나기 전에 물이 다 소진되었다면, 죽음이 코앞에 와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살길은 있는 법입니다. 긴 건기의 마지막에 물이 떨어져 가는 절망적인 상황을 대비해 이스라엘에서는 고대 시대부터 광범위한 포도 재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의 포도 첫 수확은 빠르면 7월 초, 고위도 지역 혹은 고원 지대에서는 8월 말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건기의 절정에 다다를 때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지요. 이때부터 포도는 물을 대신하는 중요한 수분 섭취원이 됩니다. 바로 수확하여 즙을 짠 상태라면 우리 개념으로 포도 주스에 가깝지만, 그대로 시간이 지나 발효가 되면 포도주와 같은 알코올 성분을 띄기도 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포도주와 포도 주스를 구분하지 않고 통틀어 야인(yāîn)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히브리어 야인은 영어의 와인(wine)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일으키신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마시고 즐기고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물이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시점에 물을 대신하여 생명 연장을 돕는 생명수로서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기쁨이요 환희, 구원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인간의 영혼에 생수와 같은 것이었고, 물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나에서 일으키신 포도주 기적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실 사역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처럼 생각 될 때,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포도주와 같은 알코올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새 생명을 연장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즉 복음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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