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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4월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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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렬 목사] 욕심 없이 사는 비결

아미쉬는 유럽에서 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독일 스위스계 개신교 이민자들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와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에 거주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재세례파가 보수화되면서 등장한 교파로서 자동차나 전기·전자제품, 전화, 컴퓨터 등 현대문명 거부합니다. 외부세계와 격리한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군대에 가지 않고, 연금을 수령하지 않는 등, 정부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도 받지 않으며, 대부분 의료보험에 들지 않습니다. 이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한 재세례파의 교리를 따른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아미쉬 어린이들에게 대한 미국 기자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매우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에 눈, 코, 입 등 얼굴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얼굴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인형의 얼굴은 대부분 예쁜 얼굴, 잘생긴 얼굴인데 아이들이 여기에 익숙해지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나 오만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미쉬는 사람의 사진이나 그림을 벽에 걸지 않는 것을 중요한 규칙으로 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남들보다 더 예쁘고 잘생겨야 한다고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분초마다 더 많이 소유해야 행복하고 더 고급제품을 가져야 권위가 세워진다고 속삭입니다. 이런 문화의 결과는 수많은 사람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감사와 만족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미국에서 살지만 그에 맞는 감사 대신 더 못가진 것에 불만과 삶의 깊숙이 파고든 열등의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사기 9장에는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향한 재미있는 우화가 등장합니다. 자기 형제 70명을 죽이고 스스로 세겜 지역의 왕이 된 아비멜렉에 관한 우화입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이었습니다. 왕이 없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이 되려고 70형제를 모두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 형제들 중 한 명인 요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아비멜렉과 그를 옹호한 세겜 사람들의 욕망을 우화를 통해 책망합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니 감람나무에게 부탁해보자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생산하고 약재로도 사용되는 올리브나무입니다. 감람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이 위치를 버리고 어떻게 사람들 위에 군림하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무화과나무도 거절하고 포도나무도 거절합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어 달라고 찾아온 나무들에게 오히려 나를 왕으로 추대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로 위협하고, 결국 왕이 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사사시대에는 왕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은혜를 주셔서 지도자를 세우던 시대입니다. 아비멜렉의 아버지였던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했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그에게 왕이 되어 줄것을 요청했지만 기드온은 거절했습니다. 기드온은 자녀들에게도 왕이 되려는 어떤 생각도 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이 욕심을 품고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것입니다.
욕망은 오늘날도 무서운 힘으로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그 힘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했습니다. 욕망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습니다. 계속 자랍니다.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죽일 정도로 욕망은 파괴적입니다. 문제는 그 욕망을 절제할 방법이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우화에서는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던 세 나무가 그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서 그 단서를 제공합니다. 왕의 자리를 거절한 세 나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나무는 모두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왕의 자리를 거절합니다.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버리고 사람위에 우쭐대겠느냐고 합니다. 포도나무도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열매를 버리고 어떻게 사람위에 우쭐대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분명한 삶의 방향과 자기의 명예와 욕망을 위해 사람들 위에 우쭐대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았습니다. 반면에 가시나무는 자신의 주제는 모르면서 내 그늘 아래 피하라고 합니다. 사실 가시나무는 잎도 없습니다. 그늘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가까이 가면 찔리지만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나무들 위에 군림합니다.
욕망이란 자신을 위하는 삶입니다. 욕망의 반대는 하나님과 타인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자신을 위해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1계명은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개역개정)

욕심 없이 사는 비결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는 삶이 아닙니다. 인간의 참된 만족과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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