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면서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비유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그 비유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 방식과 그 시대와 현시대의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의 독자들은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생생함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오해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중략)…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4-27 중략)”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안전하고 튼튼하게 자신의 믿음을 쌓았기 때문에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교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크고 네모반듯한 바위와 바닷가의 모래를 떠올립니다. 바위 위에 놓인 집은 그 아래로 비와 창수가 흘러도 안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한 물결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커다란 바위 위에 지어진 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은 그 자체로만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두 표현, 즉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우리와는 다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스라엘 지형의 대부분은 산지입니다. 지중해변가의 약간의 해안평야와 요단강가의 좁은 계곡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질적인 차원에서 보면, 북부 지역의 현무암 지대와 남동부 일부의 누비아 사암(Nubia Sandstone)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석회암도 그 생성 시기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뉘는데, 강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스라엘 대부분의 산지는 백운 석회암(dolomite limestone)으로 이루어져여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회암보다는 훨씬 그 강도가 강합니다. 이토록 강한 석회암 지대에 비가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땅으로 스며드는 물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이 표면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이러한 자연 현상 때문에 이스라엘의 산들은 대부분 바위산입니다. 토양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깊이가 깊지 않아 풀 혹은 올리브나 무화과나무와 같은 작은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는 큰 나무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목재를 두로(Tyre)에서 수입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얼마 있지도 않은 산 위의 토양들은 비가 올 때마다 흐르는 물결을 타고 산 밑으로 쓸려갑니다. 산 위는 많은 비를 맞으면서 토양들이 다 씻겨나가 점차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산 아래는 위에서부터 쓸려 내려온 흙들이 쌓이게 됩니다. 더욱이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지는 팔레스타인의 기후 특성상 산 아래로 흘러내려 자리를 잡은 흙들은 건기를 지나며 뜨거운 태양볕을 받아 바짝 굳어, 마치 단단한 바닥처럼 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비가 올 때 또다시 물이 흘러 내려와 홍수처럼 밀려들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단단한 바닥처럼 보이는 흙 위에 집을 짓습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바로 눈앞의 것만 보는 것이지요.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 즉 산 위에 집을 짓습니다.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더라도 바위로 이루어진 산 위에 지은 집은 물난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산 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흙 위에 집을 짓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인 것처럼 보입니다. 산 위에 집을 지으면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더구나 바윗덩어리 산 위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구하기 쉽지 않으니, 샘이 있는 낮은 곳으로 내려 와야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려 와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산 위에서만 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비가 오는 우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산 아래에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요. 그러나 바로 눈앞의 상황에만 사로잡혀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배경에서 ‘반석 위’와 ‘모래 위’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좋아 보이고 편안해 보이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산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어 보입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산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말씀을 따라 살기에 불편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리석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석 위의 집을 짓는 자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눈앞의 것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 되는 말씀을 따라가는 반석 위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