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문 목사] 메뚜기인가 밥인가?

믿음을 선택하기

민수기 13장을 보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경계 가데스까지 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이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정탐꾼들은 거기서 과일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그 땅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Fact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보는 정탐꾼들의 평가와 해석이 극단적으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민 13:33)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견고한 성읍과 아낙 자손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이러한 벽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도 똑같은 성읍과 똑같은 거인들을 보았지만, 완전히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갈렙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라갑시다.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민 13:30)

그러면 10명의 정탐꾼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고 느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있는 사실을 냉철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됐던 것인가요?

먼저 이 사람들은 사실에 매여 진리를 놓쳤습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현재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진리는 그 상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입니다. 이 사람들은 눈앞의 사실만을 보느라 이집트에서 10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셨던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진리를 계산에서 감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뺀 계산은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틀린 답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정탐꾼들은 객관적인 관찰에만 머물렀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탐꾼들을 보내신 목적은 정말로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오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얼마나 풍요로운 땅인지 확인하고 어떻게 거기로 들어갈 것인지 전략을 세우기 위해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갈지 말지 결정하는 투표를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한 한계를 더 높이 두는 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한 가지 더, 10명의 정탐꾼들은 사실을 보고하는 것을 넘어 절망의 해석을 유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성벽이 높고 가나안 사람들이 크다는 사실만 전달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민 13:31)라고 불신의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자기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비하하면서 이스리엘 백성들의 사기를 꺾었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실에 기반한 보고라도 거기에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더해지면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힘이 자기들 힘보다 세기 때문에 자기들이 패배할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자기들의 힘에다가 하나님의 능력을 더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패배가 승리로 뒤바뀌게 됐던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 두 가지의 계산법이 부딪힙니다. 이 세상의 계산법은 내 Bank Account Balance, 내 건강, 내가 아는 사람들의 능력만 생각하고 여기다가 더하고 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당연히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하고 불안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로 순식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과 원망 가운데로 빠져들게 됐습니다. 불신과 두려움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민 14:9)

오늘날 사회, 교회, 가정 속에는 안팎으로 절망적 소식과 부정적 평가가 넘쳐납니다. “이제 안 된다.” “희망이 없다.”라는 말이 넘쳐나게 들립니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뭘까요? 우리도 똑같이 불평을 나르는 절망의 유통자가 아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소망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를 찾습니다. 느리고 약해 보일지라도, 우리 삶에 문제가 거대하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이 문제는 나를 성장시키는 밥이 된다.” 바로 이런 믿음의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절망을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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