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 교수] 애도하는 마음의 기독교적 표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애도의 인사말입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고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그 인사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크리스천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표현인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에서 “삼가”라는 단어는 몸가짐이나 태도를 조심하고 공손하게 한다는 뜻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또는 ‘정중하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로는 ‘謹’으로 쓰며 ‘삼갈 근’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근하신년(謹賀新年)은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 근조(謹弔)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근정(謹呈)은 ‘삼가 드립니다.’ 그리고 근백(謹白)은 편지 끝에 써서 ‘삼가 말씀드립니다’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에서 “삼가”는 단순히 ‘조심스럽게’가 아니라 ‘깊은 애도와 경의의 마음으로 정중하게’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옛 고(故)’와 ‘사람 인(人)’으로 이루어진 “고인”은 세상을 떠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고(故)에는 ‘지나간, 죽은’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고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즉 ‘사망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사용됩니다. ‘고’는 죽은 사람의 이름 앞에 붙여 존칭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중국 고전에서 고인은 ‘옛 지인,’ ‘오래된 벗’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고인의 다른 표현에는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망인(亡人),”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이라는 의미의 “선고(先故)” 등이 있습니다.

“명복”은 ‘어두울 명(冥)’ 자와 ‘복 복(福)’ 자를 써서 ‘죽은 뒤에 누리는 복’을 의미합니다. ‘명’에는 어둡다는 의미와 함께 ‘보이지 않은 세계,’ ‘죽은 자의 세계,’ ‘저승’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명복의 문자적인 의미는 ‘죽은 뒤의 세계에서 누리는 복’ 또는 ‘사후의 평안과 행복’입니다. “빕니다”는 ‘빌다’의 높임말 종결형으로서 ‘바라거나 기원한다’는 말의 정중한 표현입니다. ‘부탁한다’는 의미보다는 ‘마음 속으로 간절히 소망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정중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분이 사후 세계에서 복과 평안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는 불교적, 전통적 관점에서 죽은 사람이 더 좋은 곳으로 가거나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죽음 후의 상태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원이나 기도에 의해 바뀐다고 보는 사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명복을 빈다”는 인사는 사후 세계에서 죽은 사람의 상태가 달라지기를 기원하는 표현이므로 신학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의 상태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염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복을 바라는 것은 기독교의 내세관(來世觀)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장례에서는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과 친지들의 위로하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강조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작이고, 불신자들에게는 지옥에서 하나님과 분리된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음을 마음에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셔 들인다는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죄와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을 “중생 한다” 또는 “거듭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구원 받은 사람, 중생 한 사람,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것, 예수님이 실제로 죽으셨다가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고, 피할 수 없는 두 번째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며, 그 결과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16세기 초 교황 레오 10세 때는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선전하며 면죄부를 팔았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악용한 것이고 잘못된 사후관(死後觀)을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처지는 산 사람의 소망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보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인의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유가족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는 “삼가 고인을 추모하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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