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니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자녀들의 설교 이해를 돕기 위해, 부모들에게 주일 예배 후에 집에 돌아가서 자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들었던 설교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것을 요청합니다.
가정예배라는 형식에 매이지 말고, 설교 내용이나 찬양 가사, 혹은 기도 내용 속에서 기억에 남는 걸 나누어 보라는 거지요.
그 설교 내용 속에서 아버지 혹은 엄마가 깨달은 바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라고 합니다. 어떤 가정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게 습관이 되지 않은 가정이 많기 때문에,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1-2분 정도 옆에 있는 식구들 혹은 지인들과 그날 깨달은 바를 나누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도 어색해 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게 불편해 보이는 것 같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합니다. 나머지 못다한 얘기는 집에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와 함께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함께 드린 예배를 통해서 식구들이 서로 공유하는 게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가족 안에 형성되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부드러워야 합니다. 이런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엄마들이 자녀 양육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엄마들의 기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엄마들이 아직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바를 몰라 당황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기도하면서 자녀 양육을 위한 사랑의 방법을 다룬 책을 매개로 다양한 케이스를 다루면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또는 청소년을 둔 엄마들의 경우에도 이 기도 모임에서 같은 책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들의 케이스를 가지고 조언을 얻게 되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족 수련회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구성을 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교육방송국(EBS)에서 방영한 “달라졌어요” 동영상을 활용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의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며 해결책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영상의 전반부는 가족의 이슈가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전반부의 내용을 보고서 어른과 아이들을 나누어서 여러 조로 만들어 그 가정의 문제가 무엇인지 토론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해결점이 있을지도 물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영상의 후반부를 보여주었습니다. 전문 상담자들의 다양한 해결 과정을 보면서 감탄사가 연발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서 다시 조별로 모여서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과 무엇이 달랐으며,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자녀들 그룹도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게 했는데, 어른들의 시각과 큰 차이가 나는 것에 서로 놀라더군요. 이런 계기를 통해서 세대 간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게 되었던 같습니다.
일단 통합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 리더들과 의논한 것이 목회자의 복장이었습니다. 침례교라 하더라도 전통 예배 의식을 따르는 목회자도 있었기에, 나는 집사님들과 목회자의 예배 인도 복장에 대하여 사전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침례교 목사들은 양복을 착용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양복보다는 일상복을 착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과 정서상의 친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래도 양복은 일반 복장보다 친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양복보다는 일상복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가 신하가 왕을 알현하는 자리이기 보다는 자녀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안기는 편안한 자리로 그려지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신하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게 뭔가 우리의 신앙과 일관되지 못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더 편안한 복장으로 예배를 드리는 게 아이들로 하여금 예배를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조치였지요.
한국 교회가 어떤 예배 형식을 취하더라도 목사의 복장은 적어도 양복이 기본입니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따른 교회와 은사 중심의 교회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유형의 교회라 하더라도 목회자의 복장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양복입니다. 그 위에 목회자 가운을 입으면 더 전통 교회로 여깁니다. 이렇게 양복은 모든 예배에 모든 목회자가 갖추는 기본 의복입니다. 이런 복장이 곧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데 필요한 기본이 된다고 여겼던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젊은 세대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 복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함께 시작한 식구들도 모두 한국 교회의 유산을 이어받은 분들입니다. 그러니 양복 대신에 일상복을 입고 설교를 하겠다는 나를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동의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복을 입으면 여러분은 익숙해서 편안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양복을 입은 나를 가깝게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양복을 입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을 위해서 일상복을 입을까요?”
이 질문에 어른들은 내가 일상복을 입고 설교하는 걸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일상복으로 통일할 이유는 없었지요. 어느 복장이든지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 복장으로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복장 때문에 서로를 지적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지요. 그렇다고 내가 항상 일상복만 고집한 것은 아닙니다. 가끔씩 양복을 입기도 하고, 한복을 절기 때면 입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우리의 것이 어떤 것이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통합예배는 예배 형식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예배의 본질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를 나눔교회에서는 과감하게 수용합니다. 그것이 괜찮아서가 아니라, 어른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포용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합예배는 십자가를 지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본질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수고가 요구됩니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믿어주며 기다려주는 인내를 연습하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예배라는 역설이 성립하는 예배가 되는 겁니다. 그 예배의 결과 20년이 가까이 되는 나눔교회는 세대 간의 소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려준 어른들의 성숙이 눈에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