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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6월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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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 목사] 마음하나 다스리기 힘든 인생의 회복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2003-현)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신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교회를 다니려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에 대해 이와 같은 생각과 목적을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인생의 연약함이 느껴졌습니다. 엄마 태중에서부터 함께 동고동락해온 자기 마음 하나도 온전히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칠십, 팔십이 넘으신 어르신들조차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예수 믿으면 걱정과 근심 없이 마음 편히 잠도 잘 잘 수 있겠지요?”라고 물으십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통로로, 한 번이라도 깊이 단잠을 자보고 싶은 소망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마음 하나 제대로 먹기 어려운 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 자신도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마음과다르게 말하고,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들을 되돌아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민자의 고단한 삶 속에서 ‘평안과 단잠’을 얼마나 갈망했으면 그러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단잠을 자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라는 나무에서 맺히는 여러 귀한 열매 중 하나일 뿐, 결코 본질 자체는 아닙니다.

농부가 좋은 열매를 기대하듯 우리도 열매를 구하지만, 지혜로운 농부는 열매보다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탐스럽고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뿌리에 좋은 영양분이 될 만한 거름을 주고, 땅을 기경하며, 열매 맺을 힘을 북돋아 줍니다. 그렇게 뿌리가 좋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면, 좋은 열매는 자연스레 맺히게 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를 ‘현상’이라 한다면,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근본인 뿌리는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보여지는 현상의 열매를 드러내는 데에 바쁩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농부는 열매가 아닌 뿌리에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 세상에서의 삶, 더 나아가 목회의 본질까지도 결국은 뿌리와 근본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바로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창조세계 안에서 인간이 의지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주 불변의 본질이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 삶의 뿌리를 이어 살아가는 인생은 약속하신 은혜와 평강, 그리고 모든 좋은 열매를 맺고 누리게 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설령 인생이 연약하여 풍랑 이는 바다 위를 떠도는 작은 조각배 같을지라도,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면, 그 인생은 결국 소원의 항구에 넉넉히 이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세상이 평탄하고 원하던 열매들을 다 얻은 것 같아도, 그 인생의 뿌리가 하나님께 닿아 있지 않다면, 거센 비바람 앞에서 뿌리째 뽑혀 쓰러지는 나무처럼, 비참한 모습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자녀의 출세, 무병장수 같은 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해도 그것이 풍성한 열매라 여겨져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인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 받은 사람이라며 덕담은 들을지 모르나, 결국 유한한 열매를 잠시 소유한 것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평가하기에 앞서, 겉으로 드러난 열매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인생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뿌리가 본질에서 끊어져 있다면, 그 열매의 풍성함은 결국 잠깐의 즐거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십시오. 젊은 시절 그는 원하는 것을 손에 쥐며 살아갔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경쟁심이 강했고,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넘겨받았으며,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네 아내와 열두 아들을 두었으며, 삼촌 라반과의 경쟁에서도 승리하여 많은 재산도 얻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성공한 복된 인생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딸은 세상과 어울리다가 강간을 당했고, 아들들은 시기와 질투로 갈라져 서로를 해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그는 열매를 구하기만 했을 뿐, 자신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두지 않은 삶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결국 허무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훗날 야곱이 자신의 삶을 ‘험악한 세월’이라 고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회복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세겜의 고통스러운 밤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벧엘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비록 자식들 간의 갈등과 흉년이라는 경제적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다시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림으로써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풀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요셉이라는 잃어버린 아들을 통해 노년에 큰 복을 누렸으며, 속을 썩이던 아들들 모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가정의 영적 가장인 아버지가 신앙의 뿌리를 든든히 내렸을 때, 자녀들의 삶 또한 건강한 줄기와 가지로 세워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모습은 ‘예배’ 가운데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야곱은 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고, 그때 하나님과 자기 영혼이 깊이 연결되었음을 경험했습니다. 죄악 속에서 요동하던 그의 인생은 마침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뿌리 내릴 영원한 반석이시라면, 예배는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자라가는 회복의 통로요, 도구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진액이 흘러나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뿌리로부터 물과 영양을 흡수하여 잎이 푸르고 열매가 풍성하듯, 인생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회복과 축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을 위해 세우신 법이요, 정하신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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