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샘교회 담임
부제: 고난의 진짜 의미
성경을 보면, 히스기야 14년 (BC 701년)에 앗시리아는 남왕국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믿음이 좋은 왕이었지만 이집트만 믿고 의지하다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항복의 조건으로 성전과 왕궁의 모든 은 뿐만 아니라 성전 문에 붙어 있었던 금까지 박박 긁어서 앗시리아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요즘 말로 대 굴욕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앗시리아는 2년 뒤에 다시 남왕국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왕국 유다의 영토 전체를 거의 전부를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앗시리아 산헤립 왕은 라기스에 군대를 이끌고 와서 주둔하였습니다. 유다가 이집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라기스를 통해서 가야 하는데 거기를 산헤립 왕이 앗시리아 군대와 함께 버티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이집트에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에 부하인 랍사게와 함께 20만 대군을 보내 히스기야 왕과 남왕국 유다 사람들을 압박했습니다. 한마디로 “너희는 이집트의 도움을 기대해 봤자 아무 소용 없으니 그야말로 모든 소망이 끊어졌으니 이제 그만 항복해라.”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앗시리아의 시도는 사탄의 전략과 같습니다. 사탄은 끈질기게 우리를 낙망하고 절망하도록 만듭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도울 수 없을 것 같고 어떤 소망도 전부 다 끊어진 것 같은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절망감에 끌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도록 하고 낙오자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만 절망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의 침략은 유다 사람들에게 절망에 빠지도록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앗시리아의 침공은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를 앗시리아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약속하신 대로 앗시리아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앗시리아 침공이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위기 상황에서 구원도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앗시리아가 아무리 무섭고 거세게 공격해 오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소망을 잃어버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가하면, 히스기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14년은 아버지 때 무너졌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습니다. 만연했던 불신앙의 잔재들을 씻어내고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앙 회복을 간절하게 바라던 히스기야 왕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이럴 때일수록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들을 격려하시고 이들에게 번영과 형통을 허락하셔서 유다를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셔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혹독한 고난을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던 이유는 이 환란과 어려움을 통해 신앙 개혁과 회복을 더욱 확실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더 깊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우상을 척결하고 산당을 제거하면서 종교 개혁을 단행했지만, 막상 앗시리아의 침공이라는 어려움 앞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사색이 되어 이집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히스기야는 불완전한 신앙의 삶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됐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분이신 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신실한 분이신 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겪으며 더 견고하게 하나님을 붙들게 되고 그로 인해 강하고 굳건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을 지나가도록 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 때 원망과 분노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문을 여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