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초대교회 유산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사순절 영적 축복이다. 고대교회가 시작한 사순절은 한동안 건전한 형태로 발전했다.
성도들의 영성 훈련과 교회 대각성을 이끄는 거룩한 절기였다. 교회와 성도는 사순절에 십자가와 고난을 묵상함으로 영적 성숙을 위한 훈련 기간으로 삼았다.
특히 부활절에 행하는 세례식을 대비한 세례자 교육 기간이었고 변화와 성숙의 기긴이었다.
그러나 중세에 사순절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순절이 교권을 강화 수단이 되었고 성도들을 괴롭히고 규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10세기 이후 로마교회는 사순절을 금식 기간으로 정하고, 구원을 위한 금욕과 고행의 계절로 변형시켰다. 이즈음에 지나치게 복잡하고 엄격한 규율로 본래 사순절 정신을 잃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 권위자 테일러 마샬 (Taylor Marshall)은 “중세의 사순절은 이슬람의 라마단보다 더 혹독했다(Medival Lent was harder than Islamic Ramadan).”고 전한다. 그는 사순절의 기간도 40일로 라마단(30일)보다 길었고, 금욕의 내용도 라마단보다 훨씬 복잡하고 가혹했다고 밝힌다.
사순절 금식은 여러 단계를 거쳐 가혹하고 엄격하게 발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정한 ‘피가 섞인 고기를 식탁에 올리지 말라’는 규정이다.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후 달걀과 치즈가 또 금지되었고, 점점 규정이 까다롭게 되었다.
게오르크 스텐겔은 사순절에 달걀을 금한 것에 얽힌 얘기를 전한다.
사순절에 달걀을 금했기에 사순절이 끝나면 달걀이 처치 곤란이었고 달걀 처리를 위해 수도원이나 교회에 달걀로 소작료를 내거나 기부했고 이 달걀로 교회는 부활절에 채색 달걀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부활절 달걀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중세교회가 사순절에 육식은 금하고 생선을 허락하자 수도사들이 이 규칙을 변칙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물고기를 허용하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많은 일화가 등장했다. 독일 바이에른에 한 수도원에서 사순절 기간에 오리고기를 먹었다.
그들은 오리가 물에 살기 때문에 어류로 분류할 수 있다는 참신한(?) 해석으로 사순절 오리고기 취식은 합법(?)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수도원에서는 더 능청스러운 해석으로 고기를 먹었다. 그들은 어류와 조류가 같은 종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창세기 1장 20절(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다녀라)을 인용하면서 같은 날 창조된 물고기와 새들은 같은 종족이라며 사순절에 새 고기를 먹었다.
또 어떤 수도원에서는 고기를 물에 담근 후 물고기라 주장하며 먹었다.
더 심각한 것은 타락한 사순절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1522년 사순절에 취리히 인쇄업자 프로샤우어의 집에서 인쇄 노동자들이 성경출판 기념 파티를 하면서 소시지를 먹었다.
프로샤우어는 “금식 기간에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라는 규정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고생한 노동자를 섬기는 맘으로 소시지를 식탁에 올렸다. 로마교회는 이것을 문제 삼아 그들을 처벌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츠빙글리는 1522년 3월 23일 주일설교에 사순절 금식 규정은 교회가 정한 인간의 규범일 뿐이며 성경의 교훈은 가르침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순절에 육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츠빙글리의 이 설교는 이후에 ‘자유로운 음식 선택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설교문을 출판했고, 이 설교가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츠빙글리 종교개혁은 사순절의 비판으로 출발했다. 그는 로마교회가 법과 규정을 남발하여 가련한 성도들의 양심을 옥죄는 죄를 범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순절 금식 규정을 어길 때 처벌하는 것을 하나님 말씀(성경)이 아닌 인간이 만든 법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천주교의 악습을 비판한 츠빙글리 의견을 따르며 사순절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복음주의 교회 혹은 개혁주의 교회가 사순절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대교회는 사순절을 주님을 닮아가는 절기로 삼았다. 사순절은 십자가와 고난에 담긴 주님 사랑을 묵상하며 구원의 감격을 확인하는 기간이다.
금식과 기도로 영성을 새롭게 하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복된 기간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