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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월 24, 2024

[전남수 목사] 하나님의 계산법을 따라야 합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2003-현)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저의 교단적인 배경은 ‘장로교 고신’입니다. 일제가 우리 땅을 강탈하였을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순교신앙을 지향했던 그런 교단입니다. 이 일을 주동했던 목사님들의 대부분은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고, 그 자녀들도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신앙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평탄치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영광의 크기와 고생과 고난의 크기가 서로 비례했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소위 잘나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베풀어야 마땅한 교역자들 중에 ‘미소기 바라이’라고 일본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또 세례를 주는 이들이 당시 잘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미소기 바라이’는 일본 중들이 집례하는 신도 침례입니다. 신도침례는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베풀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하는 질문에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하는 문건에 서명하여 관청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교의 일에 한국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또 예배 전에 국민의례처럼 일본 왕이 사는 곳을 향해 ‘동방요배(東方遙拜)’를 했는데, 그런 목사들이 승승장구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들의 자식들은 어땠을까요?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고위직에 있기도 하고, 권세를 누리며 꽤 잘나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상당히 불편 부당해 보입니다. 어떻게 의인이 고통과 손해를 당할 수 있나? 하나님 너무 정의롭지 못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공평하고 정의로우시고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짧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처리가 부당해 보이지만, 긴 시간을 지나보면 하나님은 공평하실 뿐 아니라, 너무나 의롭고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 교회에 부목사님으로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 가문은 선대(先代)로부터 목사만 구십아홉 명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명문가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문의 기원을 살펴보면, 출발은 너무나 비천한 형편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던 시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느라 너무 힘들고 어렵게 현실적인 삶을 이어갔던 분들이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하고 핍박을 받다 보니까, 부모가 감옥을 들락날락(?) 하다 보니 자식들에게 공부시킬 기회도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유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학교 가서 하나님 기뻐하지 못할 것을 배울 바에는 학교조차 거부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이들은 뭘 했느냐? 오직 믿음만 붙들었다고 합니다. 주일성수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새벽기도 안 하면 인생이 끝날 것 같은 그런 신앙생활을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까 세상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교회 생활하는 것, 교회에 봉사하는 것, 교회에 종처럼 헌신하는 것, 복음 전하고 성경 가르치는 것이 잘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준비된 그들을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 말고, 영적으로 필요한 부분에서 준비된 그들을 불러내어 쓰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선교사, 목사, 또는 신학교 교수, 이런 쪽으로 해서 인원이 그렇게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가문이라는 영광을 저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디.
어느 쪽, 어느 편, 어떤 부류가 복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차별하는 말이 아닙니다. 만일 둘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겠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은 정확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그 진리를 파수하는 자들에게, 넘치게 은혜로 갚아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항상 세상은 이렇게 영적으로 사는 길과 육신으로 사는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은 그런 갈래길에서 선택을 또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더라도, 영적으로 살고 영적으로 잘 되는 데 생명을 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바라보고 예배에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대통령을 했는지, 어떤 권력과 부를 누렸는지에 대해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먼 훗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얼마나 주를 위해 살았는가? 얼마나 온전한 예배자로서 교회를 섬겼는가? 어떻게 주의 말씀을 세상에 적용하였는가? 이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노벨상 받은 것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우리 삶에 분명한 것은 어찌하던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영원한 승리자로 남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 둘을 두었습니다. 둘 모두 대학생이 되었는데, 아이들의 대학선택과 공부에 대해 아버지로서 주변에서 지나치다 할 정도로 간섭을 했습니다. 공부하라는 야단이 아니었습니다. 영적으로 잘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집이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조금 열심히 해서 특별한 고등학교 같은 데를 지원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본인의 준비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저는 반대를 했습니다. 이유는 기숙학교를 가게 되면 예배생활, 교회생활이 온전치 못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때가 되었습니다.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좋은 교회가 있는 곳, 그리고 아빠가 목회하는 데, 돈 안 드는 곳이어야 한다고 정해주었습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전공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습니다. 전공은 너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하나님의 교회에 벽돌 한 장이라도 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는 데 유익한 것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의사가 되어 가지고 노벨상을 받기 위해, 주일에 교회 올 시간도 없고, 주일학교 교사할 시간도 없고, 예배드릴 시간도 없고,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예 동네 패밀리 닥터가 되라고 하면서 이름도 지어줬습니다. ‘우리동네병원.’ 너무 유명해서 끌려다니지 말고, 언제라도 문 닫고 선교도 가고 교회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그런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너희들도 엄마 아빠처럼 주님의 교회에 벽돌 한 장이라도 얹다가 천국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좋은 교회는 아빠가 섬기는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라는 전제하에, 아이 둘 모두 가까운 사립학교에 하나님에게 드린 기도제목 그대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후에 진로도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선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한마디씩을 합니다. 아이 교육을 아버지 멋대로 한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애들 중에 훗날 반드시 혼돈과 방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이상한 예언을 하기도 합니다. 걱정해 주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괜찮고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교회의 유익을 구하는 길에 나아가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분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영적 계산법을 가지고, 세상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그 경영원리에 부합되는 이들의 삶이, 복된 것이고 승리의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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