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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2월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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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 목사] 교회생활 예배생활도 훈련입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2003-현)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신앙생활은 교회생활과 예배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신앙을 말할 때, 두 가지를 기준해서 말하게 됩니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교회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어떻게 드리며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대략적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이 약해지거나 무엇인가 영적인 알람 사인 계속 켜진다면 가장 먼저 교회생활과 예배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와 예배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삶에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 이를 회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 주님의 교회와 예배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신앙적으로 엄격한 부모님들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면, 교회는 가야 된다. 주일은 네 날이 아니다. 죽어도 교회 가서 죽자(?)”는 말도 합니다. 맹신이라고 오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훈련시키고자 하는 말입니다. 예배와 교회생활이 훈련되지 않고서는, 광야 같은 세상을 버틸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입에 들어가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버텨낼 수 있는 곳이 광야가 아닙니다. 출애굽한 목적이 예배 드리기 위함인데,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고 천국 간다는 단순명제도 좋지만, 실제는 예배 받으시기 위해 지으신 창조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한 영혼이, 평생에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예수님의 이름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것, 이것이 구원의 온전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뿐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히 계속하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를, ‘한 사람의 예배자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회복이고 축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배와 교회생활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흔히 신앙생활의 업앤다운의 핑계로, 은혜를 구실삼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삼 십년 사 십년 예수를 믿어도 은혜가 안돼서 뭘 못한다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답답한 신앙, 진리의 초보를 생각게 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은혜가 안되어 교회도 못 오고, 은혜를 못 받아서 봉사도 헌신도 못하고, 은혜가 안되어 예배 드리러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대단히 위험한 말씀입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하는 말들입니다.
은혜가 될 때, 예배도 드리고 헌신도 하겠다는 분의 말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열매를 기대하기가 참 어려운 상태입니다. 은혜가 될 때만 헌신한다면, 은혜 안될 때는 그냥 예수 안 믿는 사람보다 더 못하게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태도는 주님 앞에 책망 받을 신앙의 자세입니다. 자신을 은혜의 판단자로 세우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 성숙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은혜가 되어 봉사해도 좋지만, 그러나 은혜가 안된다 싶은 마음이 들 때에 더욱 힘쓰고 애씀으로 자신의 연약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설 수 있다면, 그는 정말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성숙한 성도일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 너무 젊어 가지고 자신을 지도하기에는 인생의 뭔가를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나이가 30대중반일 때 그렇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기억납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제대로 신앙생활하시는 분을 본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연한을 마치 계급장을 단 것처럼 여기며, 이리 저리 어슬렁거리며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되물어 질문한 것이 생각납니다. 제가 환갑이 되면 그때는 열심히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날이 올 때 까지는 그저 신앙생활을 대충 대충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결국,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스스로 내어버리며 잃어버린 세월이 한참 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환갑이 지나고 칠순이 되어 은퇴가 되어도 그렇게 한량스레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은혜가 떨어질지라도, 때로는 은혜가 없다 싶을지라도 한결같이 팔다리를 움직여서 은혜주실 줄 믿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예배의 승리자가 되고, 하나님 음성을 들으므로 말미암아 내 삶을 새롭게 계속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만들어 끌고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온전한 성도의 삶인 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되어야 합니다. 순종이 되지 못하면, 복종을 하면서도, 교회와 예배 앞으로 한결같이 나아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좋은 것은 뼈에 새기라고 했으니, 뼈에 새길 정도로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실제, 성숙한 성도의 삶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교회생활과 예배생활에 잘 훈련되어 있음을 봅니다. 엄격하게 훈련된 분들도 봅니다. 저들의 몸과 마음, 말과 행위에 깊이 스며 있는 은혜의 골들을 보면서 감동하게 됩니다. 세상의 일에 요동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많은 말과 시험거리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뼛속 깊이 잘 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학교에 비유해서 그렇지만, 학교 가고 싶어 가는 사람 있을까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보니까 모든 어른들의 고백이 학교가 좋았다거나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인사하는 법도 배우고 글도 읽으니까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부모 자신도 그토록 가기 싫었던 그 학교를 자녀들이 안 가려고 하면 몽둥이를 들고 애를 막 쫓아내서라도 그렇게 학교가라고 닦달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보니까 좋더라는 겁니다. 우리 신앙도 그런 것입니다. 신앙의 모든 것을 알고 또 경험도 한 후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 따라가는 훈련, 예배 시간을 지키는 훈련, 예물 드리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 등등 훈련이 너무 중요합니다. 훈련이 되면 편안해집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해가 되어야 믿겠다는 사람들은 이해될 때까지는 신앙생활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음의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을 믿고 가면, 믿음으로 살던 사람에게 언제쯤 이해가 되어지는 그 순간에는 정말 폭발하는 믿음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이해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듯, 신앙의 삶의 여정도 그렇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훈련하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뭐가 보여야 한다는 것은 아직 초보입니다. 성령님께서 내게 뭔가를 강하게 불도장을 찍듯이 그렇게 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잘 모르지만 학교가는 마음으로 계속 주님 앞으로 교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되게 하시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들을 다 알게 하실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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