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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4월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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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회복과 현실 목회

정한 시간 정한 장소, 모이는 교회와 예배

코로나를 지나며 미래 목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소견을 나누는 일이 있었다. 시대나 상황 조건에 따라 목회의 강조점이 다를 수는 있으나, 특정한 미래 목회의 형태를 달리 지칭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 예배, 교회는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핍박과 박해가 심각할 때에는 지하무덤에 숨어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늘 우리의 기준점이 되는 신앙은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몸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시대는 성경을 거슬러 ‘예배와 교회, 신앙의 중심’을 허무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감행한다. 이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모이기를 폐하는 이들의 종말론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목회는 시대적인 상황들을 정확히 조명하는 가운데, 이를 역행하고자 하는 엄청난 노력들을 쏟아야 할 것이다.

편리주의, 개인주의, 상대주의
코로나를 지나며 특별한 목회적 현상을 말하고자 할 때, 먼저 이 시대의 반 신앙적인 사고형태 몇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편리주의의 득세이다. 주일에 굳이 불편하게 교회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집의 침대 혹은 소파에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예배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분석 판단하는 예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배를 통해 나를 복종시키도록 말씀이 나를 꺾도록 해야 하는데, 내가 말씀과 예배를 평가하는 엉터리 위치를 점하며 사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개인주의는 결코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성경에서 구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씀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행16:31)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신앙의 삶은 반드시 그 선한 영향력이 ’집‘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에게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제대로 예수 믿은 사람, 참 예배의 사람들은 그 이웃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고 나누며, 삶 속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자연스레 가지게 된다.
세 번째는 상대주의적 경향이다. 예전에는 신앙에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 목사님을 통해 분별되고 공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생각을 먼저 정해둔 채, 스스로 자료들을 취사선택해서 이리저리 모은다. 게다가 인터넷 영상시대를 통해, 설교를 마치 어떤 논문 발표처럼 서로 비교하며 좋고 나쁨을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한다. 이것이 심화하면 어떻게 될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말씀은 그저 설교자의 의견(just his opinion)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씀의 순종자가 아닌 평가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관점회복
이러한 문제를 벗어나 온전한 은혜의 회복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교회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강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흔히 교회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쉽게 ‘에클레시아,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에 방점을 두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모임 자체를 강조하는 ‘에클레시아’의 개념은 ‘장소로서의 교회’와 연결될 때 실제적인 부흥과 회복의 열매를 보게 된다.
성경은 구별된 장소로서의 교회를 너무 많이 강조하고 있다. 구약의 성전과 성막, 회당의 역할과 신약시대 교회의 역할을 연하여 성경에 드러난 ‘장소로서의 교회’를 생각해 보자. 다윗은 누군가 자기더러 예배드리러 가자고 말하면, 그 소리에 마음이 기뻤다(시122:1)고 말한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시84:4)고 한다. 주의 성전에 주님의 눈과 마음이 있다(대하7:16)고 증거한다.
신약으로 건너오면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행1:4)고 장소를 지정하셨다. 그곳이 어디인가? 마가의 다락방이다. 곧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장소이다. 게다가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의 서신들과 복음증거의 내용들을 통해, 눈에 보이는 지상의 교회를 바르게 세움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 곧 천상의 교회의 원리를 드러내려 했다. 이러한 성경자체의 변증을 보게 될 때, 참된 교회의 이해를 위해서는 ‘에클레시아’의 개념뿐 아니라, ‘장소로서의 교회’에 대한 관점도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온전할 때, 코로나를 지나고도 여전히 예배현장에 나타나기를 꺼려하는 연약한 이들과 모이기를 폐하기 즐겨하는 종말시대 성도를 대비하는 미래 목회의 그림을 잘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교회와 예배는 회복의 통로
교인 중에는, 교회 안이나 밖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하며, 그 결과 교회를 경홀히 여기고 마침내 복된 성도의 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복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주의 성전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세상의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성도의 제일 소원은 아버지의 집에서 사랑받고 쓰임 받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시132:13-15). 성도는 성전을 귀히 여기며, 성전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성전에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맡겨주시든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성전생활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회복과 축복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축복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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