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소명이다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잠 10:5)
창세기 1-2장을 살펴보면 노동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일하시니 인간도 일하라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의 결론 부분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창 1:31)에서 “지으신”(아사)이란 ‘일하다’(to work)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고 계시기에 우리도 일하는 것은 신성(神聖)하다는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아름다움을 창조하였으니 인간도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대리자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창조해 내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라’ 명령을 주셨으니 인간은 그 명령을 실천해 내야 합니다.
‘정복하라’는 것은 억압하고 착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모지와 같은 세상을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아름답고 편리하게 개간(開墾)하고 경작(耕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인 것입니다. 또한 통치도 아담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듯이 사랑과 돌봄의 통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창2:19).
그러나 우리는 조선의 유교문화에서 노동을 천시(賤視) 여겨 상놈으로 취급하고 글을 읽는 유생들만 양반으로 취급했던 관습이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종(dirty, difficult, dangerous)를 기피하는 현상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고 하나님이 주셨다는 ‘소명(召命)으로서의 직업관’을 주장하였습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마틴 루터의 노동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기 위한 수도원 생활이란 무가치할 뿐만 아니다. 이는 이기심의 냉혹한 산물이며 세속적 의무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하여 거꾸로 세속적인 직업 노동이야말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노동을 신성(神聖)하게 여기며 소명의 천직(天職)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는 일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망각하고 깊이 잠든 자식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기 ‘자다’(라담)는 단어는 ‘깊이 잠들다’(to sleep deep)는 뜻과 함께 ‘기절하거나 무감각한 상태에 빠지다’(to sink down stupified or senseless)는 뜻도 있어 노동에 대하여 완전히 무책임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일하기 싫어 자빠져 있으려면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살후 3:10).
“주님!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부모님께 부끄럼을 끼치는 자식이 안 되게 하옵소서”
– We build people 김성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