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시아 꽃잎 사이로 봄빛이 너울거리는 6월 어느 날, 목회자 영성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은 세 차례의 강연과 두 차례의 소그룹 토의로 진행되었다. 몇 가지 발제 중에 필자가 속한 그룹에서는 ‘목회자의 은퇴와 그 이후의 삶’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어서 사모의 정체성과 위치, 사역과 삶의 균형, 은사대로 사역할 통로, 구세대와 MZ세대 사모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가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특히 평생을 목회에 온전히 헌신하고도 마지막 순간에 내려놓지 못해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와, 은퇴 후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사례들을 중점적으로 나누었다. 평생을 헌신한 목회지를 떠나는 것은 삶의 전부를 재조정하는 영적 환절기이기에 목회자들의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목회적 배경과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르겠지만,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정결한 신부의 영성으로 신랑 오심을 예비해야 한다는 점에 모두의 마음이 모였다.
그룹 토의 중 한 사모는 MZ세대의 예배 태도와 노출 문제를 예로 언급하며, 세대 차이인지 신앙관의 차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디까지 관여해야 좋을지 모르는 실제적인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젊은 꼰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젊은 꼰대’란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의 경험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젊은 세대를 뜻한다. 기성이든 젊은 세대든, 꼰대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공감 능력의 부재’에 있다.
영국 국영방송 BBC에서도 오늘의 단어로 한국어 ‘꼰대(Kkondae)’를 소개하며 ‘자신은 늘 맞고 다른 사람은 늘 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정의해 표현한 바 있다. 세대와 무관하게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이러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면 소통의 장벽이 생기고, 소통의 부재는 결국 모든 불협화음의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문화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고, 젊은 세대 역시 신앙을 묵묵히 지켜 온 선배들의 영적 자산을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문화적 소용돌이 속에서 세대 간의 격차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공감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목회자의 살아있는 영성은 시대적 상황이나 세상의 가치에 쉽게 순응하지 않고 바벨탑을 쌓는 세상 기준에 과감히 역행한다. 세상의 가치 기준은 외형적인 규모와 가시적인 화려한 성과에 집중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거룩함에 있다. 불변하는 성경적 가치와 본질을 끝까지 지키는 깨어 있는 영성이야말로 세대의 격차를 뛰어넘어 목회자 개인과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영성의 깊이는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의 시간에 비례한다. 분주한 목회 현장에서 정작 자신의 영성 관리에 소홀하면 영육의 탈진 상태에 이르고, 결국 목회자 자신은 물론 가정과 교회도 건강하게 설 수 없다. 사역의 분주함과 개인 영성 관리 사이의 깊은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군중을 뒤로하고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목회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영적·정서적·심리적·신체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역시 영적 지도자가 영적으로 고갈되지 않도록 희생만을 요구하기보다 기도하며 동역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계절을 지나며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절기를 마주하곤 한다. 이 환절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다음 계절의 기후와 사역의 방향이 달라진다. 목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떠한 난제와 갈등의 환절기 역시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늘 염두에 둔다면, 목회 현장의 어떠한 난제도 잠잠히 십자가 앞에 나아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최종 평가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다. 목회 현장에서 남몰래 흘린 눈물의 무게와 헌신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사람의 진가는 머물 때가 아니라 떠난 후에 남겨진 뒷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각자의 처한 영역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몫을 다하고 겸손히 내려놓았을 때 진정한 평가를 받는다. 목회자는 목회 현장을 떠났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사역을 마치고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목회자, 머문 자리가 향기 나는 영적 지도자로 기억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먼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나의 아들과 딸아!” 하시며 품에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포럼이 끝나고 나오는 길, 웅크리고 있던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