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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4월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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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징계의 목적을 깨달아라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잠3:11)

“내 아들아”는 부모가 자식을, 스승이 그 제자를 부르는 소리이지만, 또 한편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자녀처럼 여기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의 영으로 자녀 삼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롬8: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아버지가 그 자녀를 징계하듯이 우리들을 징계하여 바르게 세우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12:7)
여기 ‘징계’(מוסר, 무사르)란 무섭게 두들겨 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인생의 바른 길을 걷게 하기 위한 ‘훈련’(discipline)의 목적으로 채찍질하는 가벼운 징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살짝 건드리는 것이든, 강하게 때리는 것이든 징계는 우리로 바른 길로 돌아서라는 훈련의 막대기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더더욱 “자신의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롬2:5)으로 거역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유독 교회를 향하여 부당한 취급을 당하게 하여 식상(食傷)하기도 하고 울분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어찌하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코로나 몽둥이, 또는 채찍으로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바로잡고자 하는 교정(矯正)의 목적과 더 성숙하게 만들려는 훈련의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적 공동체 세우기보다 너무 건물적 교회 중심으로 사역해 온 것이 아닌지요?
우리는 말씀의 실천보다 너무나 세속적 기복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연합보다 너무나 개교회주의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신앙적 실천보다 체험적인 것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맡겨주신 과제보다 너무 안일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여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잘못된 신앙 형태를 교정(矯正)하기를 위하여서 코로나 징계를 보내셨다고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으며 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텅~빈 교회당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징계의 지적과 책망에 대하여 기분 나빠하거나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잘못을 지적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실수를 범했던 것처럼(대하16:10) 우리도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여! 나로 항상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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