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 F
Dallas
토요일, 4월 20, 2024
spot_img

[전동재 박사] 유전자가 가르쳐준 기적

전동재 박사 UT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콜레스테롤 대사관련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현재 Dallas Baptist University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생명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몸은 30 조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세포의 핵에는 30억개의 DNA 염기 서열 (DNA nucleotide sequence)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 유전체(Genome)가 있다. 30억개의 염기 서열은 유전자의 알파벳으로 비유될 수 있겠다. 그럼 30억의 알파벳은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될까?

미국에서 출판되는 책들의 경우 한 페이지에 평균적으로 3000개 철자가 담겨있다고 한다. 만약 1000 페이지가 되는 두꺼운 책을 만든다고 할 경우 30억개의 염기서열은 10,000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또한 한 사람이 평균 일분에 60 단어를 타이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매일 8시간 쉬지 않고 50년을 일해야 겨우 쓸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포의 DNA를 연결한다고 한다면 670억 마일의 길이가 되고 이는 지구와 달 사이를 15만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가 된다고 하니 사람이 지닌 DNA의 양적 방대함에 놀랄 뿐이다. 

그럼 사람의 방대한 DNA에는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있을까? 참고로 유전자란 단백질을 발현할 수 있는 DNA 조각 (Fragment)을 말한다. 인간의 DNA에 어떤 유전자가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1990년도부터 2003년까지 생물학적 국제 공동연구 사상 가장 큰 연구 프로젝트인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미국의 주도로 진행됐다. 3조 달러를 투입하여 13년간의 지속된 공동연구를 통해 인간을 유전정보 차원에서 정의하는 설계도가 세상에 드러난 셈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사람이 적어도 10만 개 이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훨씬 적은 2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동차 한 대의 부품 수를 작은 나사 하나하나까지 세어보면 평균 3만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인간이 자동차보다 복잡한 정도에 비해 너무나 적은 수의 유전자였다. 30억개의 염기 서열로 이루어진 DNA 정보의 양에 우리가 첫 번째로 놀랐다면 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유전자 수에 두 번째로 놀라게 된 것이다. 아니 이 적은 수의 유전자로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유전자의 질적인 능력에 세 번째로 놀라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DNA가 물리적으로는 가느다란 실과 같은 1차원 구조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유전자의 질적 차원은 헤아릴 수 없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정보라는 이야기이다. “DNA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더 발전된 것이다”라고 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DNA는 100% 디지털 코딩 정보이다. 컴퓨터가 0과 1을 사용하는 2진 코드(Binary Code)를 사용한다면 DNA는 ATGC로 표현되는 4개의 염기를 사용하는 4진 코드(Quaternary Code)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안팎은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복잡하고 혼돈스럽지만 그 속에서 생명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질서를 유지해간다. 2만 개 남짓한 유전자들이 독특한 자신의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상황에 따라서는 항상성을 위해 반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을 뿐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다른 단백질들과의 만남에는 특이적 의미가 숨어있으며 유전자 발현을 통해 자신이 언제 등장하고 언제 퇴장할지 잘 알고 있다.

유전자 발현이라는 소환 과정을 통해 나온 단백질은 “생명(生命)”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살라는 명령”을 받들고 그 소명을 다한 후 사라진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전자가 가르쳐주는 생명이다. 유전자에게 심지어 우리 삶의 숭고함을 배운다.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의미는 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세대가 거듭되면서 전쟁과 기근, 핍박과 자연재해, 질병과 사건 사고가 있어 왔으나 내 직계 조상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건네주는 일에 단 한 번의 실수나 실패 없이 완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전백승의 전적을 보유한 이 유전자가 지금 이 시대에 천문학적 수에 가까운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나를 택했다는 사실은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이유가 된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