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오랫동안 미루고 있던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묘역을 남편과 함께 방문했다. 태평양 해안가를 따라 왕복 일곱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카핀테리아의 공동묘지였다. 그곳 주변은 아늑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누군가 따뜻한 품으로 감싸안고 있는 듯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교사님 가문의 묘비 앞에 섰을 때 먹먹한 마음이 앞섰다. 그곳에는 한국 장로교 선교의 아버지이자 평양신학교를 설립하고 한국 교회의 영적 기틀을 놓았던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 선교사님과 그의 아내 루시아(Lucia Fish Moffett, 1877~1962) 선교사님, 그리고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위에 낙엽이 쌓여 있었다. 이국땅의 조용한 묘역에서 한국 교회의 뿌리가 된 이름을 마주하는 순간 눈앞이 희미해졌다.
이 평범해 보이는 가족 묘비 뒤에는 한국 교회가 잊어서는 안 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 평안히 잠들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마포삼열 선교사님과 그의 아내 루시아 선교사님의 유해는 그 묘지 아래에 남아 있지 않다. 그분들의 유골은 지난 2006년,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한국 땅으로 이장되어 현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에 합장되어 있다. 육신은 태평양을 건너갔지만, 이름은 여전히 고향의 묘비에 남아 두 대륙을 영적으로 이어주고 있는 듯했다.
비어 있는 묘비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 앞에 서 있었다. 무엇이 선교사님으로 하여금 고국 미국에서의 보장되고 안정된 삶을 내려놓게 했을까. 태평양 건너 먼 동방의 가난하고 낯선 나라 조선을 잊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뼈를 그 땅에 묻어달라고 갈망했던 그 뜨거운 사랑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영혼들을 향한 열망으로 충만했던 선교사님의 그 마음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조선을 살리는 생명의 불꽃이 되었다.
1890년 26세의 청년으로 조선 땅을 밟은 마포삼열 선교사님은 외국인에 대한 경계와 배척이 심했던 평양으로 망설임 없이 향했다. 청일전쟁의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았고, 훗날 장대현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1901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서 길선주 목사 등 초창기 한국 교회를 이끈 영적 거목들을 양성해 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사역은 성벽 안에서의 단순한 복음 전파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과 1919년 3·1운동 당시 우리 민족이 겪는 참혹한 고통과 억울함을 세계 외신과 본국 선교부에 알리며 민족의 아픔을 함께 짊어졌다. 1930년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서도 결코 신앙적 타협을 하지 않은 채 학교와 신앙의 순결을 지켰다. 이 일로 선교사님은 결국 1936년 일제에 의해 고국으로 강제 추방당해야만 했다.
4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청춘과 온 생애를 바친 후 억울하게 추방당해 돌아온 고국이었지만, 선교사님의 심장은 산타바바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순간까지 오직 조선을 향해 뛰고 있었다. 1939년 소천 직전 선교사님이 남긴 “내 뼈를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은 단순히 조선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주님이 맡겨주신 조선의 양 떼를 목숨 다해 사랑한 진정한 목자의 고백이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 가문의 묘비는 유해가 어디에 묻혔는가 하는 단순한 장소적 의미를 넘어, 하나님 앞에 헌신한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생애가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를 증언하는 이정표였다. 선교사님의 유해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한국 땅으로 돌아갔지만,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단 하나의 메시지다. 바로 ‘자신을 드려 타인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한국 교회의 부흥과 신앙의 자유는 자신의 생명과 뼈마저 아낌없이 내어준 선교사님들의 피와 눈물의 토대 위에 든든히 서 있다.
선교사님의 비어 있는 묘비 앞에서 많은 상념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저마다 주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자리에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믿음의 선한 경주를 완주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카핀테리아 묘지의 빈 묘비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각자의 심장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묻는 듯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빈 무덤은, 우리가 품을 소망은 이 땅이 아닌 영원한 천국임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때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의 용사들이 일어나 열방을 향해 순종의 발걸음을 옮길 때다. 모든 세대가 눈을 들어 열방을 향하신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있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