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보 목사]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도

삼손이 사사로 세워질 때는 이스라엘에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다.

40년간 블레셋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다. 그만큼 무감각했다. 사사 시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졌고, 삼손은 그 마지막 사사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암흑기에 삼손을 세우셨다. 구원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아무리 무너진 시대라도 하나님이 세우시면 회복이 시작된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뜻은 작은 태양이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마지막 태양을 띄우려 하셨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부어주신 능력은 놀랍다. 맨손으로 사자를 찢었고 (삿 14:5-6), 혼자서 아스글론 사람 서른을 처리했으며 (삿 14:19),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죽였다 (삿 15:14-16). 더욱이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네 번이나 임했다 (13:25, 14:6, 14:19, 15:14).

구약에서 한 번의 임재도 드문 일임을 생각하면, 이는 하나님이 삼손에게 얼마나 큰 은혜와 회복의 열망을 담으셨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삼손은 그 부르심을 따라가지 못했다. 블레셋 여인을 보고 반해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나실인에게 이방인과의 결혼은 우상숭배에 버금가는 죄였다.

부모가 만류하자 삼손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3절). 사명도, 부르심도, 이스라엘의 회복도 자기 욕구 앞에서 내려놓은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삼손을 주권적으로 사용하셔서 블레셋을 치는 도구로 삼으셨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삼손의 선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삼손은 그저 자기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행동했을 뿐이다.

여자를 얻었고, 꿀을 먹었고, 순간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결국 머리가 잘리고 눈이 뽑혀 망하는 길로 갔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에서 살았다면, 여자나 꿀이 줄 수 없는 훨씬 큰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삼손에게 성령이 네 번 임했다면, 우리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도 주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삼손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바란다. 그런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삼손이 진짜 하나님께 방향을 맞춘 것은 눈이 뽑힌 후였다. “주 여호와여…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삿 16:28) 그가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아있을 때보다 많았다.

20년 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다시 역사를 쓰셨다. 사무엘은 자기 욕구가 아니라 말씀의 성취에서 기쁨을 얻은 사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기도하지 않는 암흑의 시대다. 그러나 그만큼 기도가 절실한 시대이기도 하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마 9:37-38) 하신 말씀을 붙들고, 우리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쪽으로 돌려야 한다.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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