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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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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람 교수] 20세기의 판도라 상자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자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이다.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는 단단히 화가 났다. 불은 신들에게만 허락된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내린 제우스는 인간에게도 화풀이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어 인간 세계에 내려보낸다. 제우스로부터 멋진 상자 하나를 선물로 받은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결국 상자를 열어버린다. 그때부터 상자에서 나온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각종 질병으로 인간들은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20세기 과학 기술의 판도라 상자 하나를 고른다면 핵에너지가 아닐까 한다.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가 같다는 걸 알아내고,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과 원자구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핵반응에 의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 비극은 핵에너지가 전기 생산보다 폭탄 제조에 먼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첫 핵분열 반응 실험은 1938년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에 의해 실행되었다. 우라늄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나타나는 핵반응을 관찰하였는데, 그들은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원자가 생성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반대로 핵이 분열되는 결과를 얻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핵이 쪼개졌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 다른 물리학자들의 도움으로 핵분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라늄이 어떻게 분열하는지 대략의 과정을 짚어보자. 이를 위해 원자의 구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자기호는 아래 왼쪽 그림처럼 적는다.

그림 : 원자기호와 원자핵 구조

U는 우라늄을 뜻하고 왼쪽 아래 92는 양성자의 개수를 보여준다. 위에 있는 238은 질량수라고 부르는데, 양성자와 중성자 개수의 합이다. 따라서 238과 92의 차이인 146이 중성자의 수가 된다. 위 오른쪽 그림처럼 우라늄의 핵에는 중성자 146개와 양성자 92개가 빼곡하게 뭉쳐있다.
원자의 전체적 성질은 양성자의 개수에 의해 좌우되므로 같은 양성자 수를 가진 두 원자가 있다면 둘은 같은 원소로 본다. 그런데 같은 원소라도 중성자의 수는 다를 수 있다. 이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우라늄은 대부분 146개의 중성자를 가졌지만 전체 우라늄의 0.7퍼센트에 해당하는 아주 극소량의 우라늄은 143개의 중성자만 가지고 있다. 이 극소량의 우라늄 동위원소(질량수 235)가 핵폭탄과 원자력발전의 주원료다.
질량수 235의 우라늄 동위원소가 중성자와 충돌하면 우라늄 원자는 쪼개져서 두 개의 다른 원자가 되고 2개 혹은 3개의 중성자가 파편처럼 튀어나온다. 이 과정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경우는 바륨과 크립톤으로 쪼개지며 3개의 중성자가 부산물로 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는 텔루륨과 지르코늄으로 쪼개지고 2개의 중성자가 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는 이 핵분열 과정에서 질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핵분열 전과 후에 총 중성자 개수와 양성자 개수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질량은 살짝 줄어든다. 결합되어 있는 양상에 따라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질량이 달라질 수 있다. 줄어든 질량은 에너지 형태로 변환되고 이를 이용하여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주목할 만한 사실은 부산물로 나오는 중성자의 개수다. 하나의 우라늄 동위원소와 하나의 중성자를 충돌시켰을 때 결과로 두 개 혹은 세 개의 중성자가 나온다. 이 중성자들은 다시 옆에 있는 우라늄 동위원소를 분열시켜 연쇄반응이 만들어진다. 한 번의 핵분열이 두 개의 중성자만 만들어 내더라도 분열할 때마다 중성자 수가 2배를 늘어나고 이는 핵분열이 매번 2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렇게 연쇄반응이 매우 폭발적이기 때문에 폭탄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핵폭탄은 질량수 235의 우라늄을 90퍼센트 이상 고농도로 농축시켜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반면, 원자력발전에서는 동위원소 우라늄 농도를 약 4 퍼센트 정도로 농축시켜 핵분열을 만들어낸다. 원자력발전에서의 핵분열은 발전소의 특수 시설로 제어할 수 있다.
핵폭탄은 플루토늄으로도 만들 수 있다. 핵폭탄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은 양성자 94개와 중성자 145개를 가지고 있다. 플루토늄도 우라늄처럼 중성자와 충돌하면 핵분열 연쇄반응이 생긴다. 다만 광물 형태로 얻을 수 있는 우라늄과 달리 플루토늄은 자연 상태에서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 물질이다. 실제로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자력 발전소다.
우라늄과 중성자가 충돌하면 일부는 핵분열하지 않고 베타 붕괴라는 과정을 겪은 뒤 플루토늄이 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기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이 생기기 때문에 이 과정은 국제 조약에 따라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바로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핵폭탄도 문제지만 원자력발전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고, 핵폐기물이 점점 골칫거리가 되면서 핵에너지는 그야말로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말았다. 판도라가 급하게 상자를 닫아 그 속에 있던 ‘희망’만은 우리에게 남은 것으로 판도라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원자력에너지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을까? 다음 칼럼에서 좀 더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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