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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5월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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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결 고운 지체들과 함께

서정숙 사모
시인
달라스문학회회원

발꿈치 들고 살그머니 걷듯 살폿살폿 살포시 결이 곱게 내리는 빗소리, 토닥토닥 토닥이듯 정겨운 빗소리가 밤잠을 깨웠는데 빛 밝은 시계가 한밤중임을 알려줍니다. 연휴 끝 난 후 작은 둥지의 바쁜 만남이 고단했던지 집에 오자 초저녁부터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삶의 문제로 애면글면 같이 아파하며 울어야 했던 안타까움에서 벗어나 한숨 돌린 안도감에 꿀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응급실에 가야 했던 지인들과 자녀들의 급박한 상황들, 특히 재활병원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던 지인 어르신이 다시 재활병원으로. 10대 손자의 수술, 자녀와 아내가 있는 50대 아들의 연이은 응급실행, 정신이 아픈 30대 아이를 위해 10여 년째 법정 싸움 중인 엄마 등. 늘 가슴이 젖습니다. 자녀가 몇 살이든 자식 문제라면 마른 가랑잎처럼 바스러지기 쉬운 것이 부모의 마음, 특히 어미의 마음입니다.
어느결에 해가 바뀌고 벌써 여러 밤이 지났습니다. 이어령 님의 『80초 생각 나누기,지혜편』에 “한국말에는 참으로 많은 결이 있습니다. 나무에는 나뭇결, 물에는 물결…마음에도 마음결이 있지요…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결부터 찾아가세요. 꿈결을 따라 마음의 결, 삶의 결을 따라가면 땅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세상이 한결 아름다워질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친구와 동호회는 물론. 종교단체, 친목 단체, 봉사단체까지도 결 따라 모이게 되지요. 근 30년 지나는 동안 내 작은둥지의 단골손님도 결 따라 모인 듯 거의가 보수적인 크리스천입니다. 코로나의 직격탄에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은 온기를 주고받을 마음 결들이 남아있습니다.
L은 그날 아침 따라 늦장을 부리는 남편에게 트레이너가 기다리니 빨리 가라고 동네 체육관으로 등 떠밀어 보냈는데 체육관에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가기 싫어하면 보내지 말 걸 억지로 보낸 자기 때문이라며 작은 둥지에 올 때마다 눈물을 쏟았습니다. 자녀가 없기에 늘 함께 다니던 하키 게임, 오페라, 음악회 등 부부 시즌티켓과 여행 항공권 등 또한 가슴을 도려내듯 아프게 했습니다. 변호사였던 남편의 재정문제로 회계사를 만나러 간다고 와서는 어깨를 들썩이며 큰 소리로 펑펑 웁니다. 포옥 감싸 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2년 전에 뇌암으로 갑자기 남편을 보낸 M이 눈시울을 적시며 자기도 많이 도움이 됐다고 ‘배우자 사별 상담’을 권했습니다.
새해 들어 다시 작은 둥지에서 만난 두분. 둘 다 젊은 나이에 은퇴했지만 킨더 가든 교장선생님이었던 M과 로펌 변호사였던 L.

은퇴도 못 한 채 남편이 갔어요. 그가 일하던 대학에 아이들 데려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더라구요. 도서관에 둔 자녀들을 케어해 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L은 어떠세요?

방과 후 학생들의 읽기와 쓰기를 돕는 자원봉사를 신청했는데 자녀 키운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이 걸리는 거 같아요. 기회 되면 우먼쉘터의 자원봉사 변호도 생각하고 있어요.

남편의 물품 정리를 어떻게 할 계획이셔요? 전 해가 세 번 바뀌도록 정리를 못 했죠. 교회의 자선 단체그룹에 도네이션하기로 했어요.

저는 쉘터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빨리 주는 게 나을 듯해서 며칠을 울면서 정리했어요.
그 말을 하면서도 L은 또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나의 새해 계획을 묻습니다. 작은둥지를 언제까지 계속 할런지가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동하기. 아파도 빨리 낫기. 매듭은 맺지 말기. 맺혀진 매듭이 생각나면 두세 번 큰 숨 내쉰 후 대면해서 풀기. 매일 나 자신을 두 팔로 꼭 안아주고 칭찬해 주기. 그 마음 그대로 누군가를 따듯한 눈길과 마음으로 안아주기.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지만 따라 하려면 특허비를 내야 하느냐는 L의 말에 전직은 감출 수 없다는 세 여자의 결 고운 웃음소리! 모처럼 ‘작은 둥지 맑음!’이 되었습니다.
작심삼일이란 지어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렇지 네가 할 수 있겠니 라는 콧방귀에 낙심하며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당뇨 진단을 받은 유대인 내 친구. 십여 가지의 다이어트를 시도하며 새로운 다이어트 책이 나올 때마다 사 보는 아나에게 누군가가 빈정거렸습니다.

빼면 뭐 하니 또 먹고나면, 또 찔걸.

아니! 잘 하고 있는거야. 그렇게라도 해야지. 삼일 하다 멈춰도 다시 시작하면 또 삼일 다이어트 하잖아.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야.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될, 주님처럼 결 고운 지체들의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요. 부디 전쟁과 자연재해가 멈추는 평화의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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