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 F
Dallas
일요일, 5월 5, 2024
spot_img

[박우람 교수] 탄소 배출과 원자력 발전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자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2011년 3월 11일, 일본열도의 북동쪽 앞바다 깊은 곳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저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영향권에 있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운행이 자동 정지되었다. 지진에 의한 사고를 막기 위해 내려진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지진의 여파로 외부에서 원전으로 가는 전기가 끊어졌고, 이런 사태를 위해 마련된 내부 긴급 전력 장치를 이용해 뜨거워진 핵연료를 냉각시키기에 이르렀다.
원자력 발전에 관한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냉각 기술이다. 원자력 발전에 이용되는 핵분열 반응은 에너지양이 많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어하기 어렵기도 하다.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한 높은 온도를 잘 식혀주어야 한다. 발전이 끝난 연료봉을 제대로 식히지 않으면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냉각수를 확보하기 쉬운 바닷가에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저 지진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14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해안가를 덮쳤다. 이는 원자로의 뜨거운 연료를 식혀주던 냉각 장치를 삼켜버렸다.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원전은 폭탄 그 자체가 되었다. 순환하지 못한 냉각수가 끓어 수증기로 날아가 버렸고, 공기 중에 노출된 뜨거운 폐연료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소를 만들어냈다. 이 수소가 다시 폭발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은 원전뿐만 아니라 일반 건물의 내진 설계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이다. 그런 일본도 지진에 의한 원전 사고를 막지 못했으니 전 세계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때는 전 세계가 마치 다시는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을 듯이 떠들었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신문 기사를 보다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랍 에미리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발표된 국제 공동 서약 때문이었다. 참가국 모두가 참여한 서약은 아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한국 등이 포함된 22개국이 원자력 발전 규모를 2050년까지 3배로 늘이는데 서약했다고 한다. 최종 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은 아니지만, 꽤 무게감이 있는 나라 여럿이 포함된 서약이기에 향후 원자력 발전 산업의 방향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런 국제 서약이 10년 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전 세계의 비난을 한몸에 받지 않았을까? 10년의 세월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잊기에 충분히 긴 시간인 걸까? 후쿠시마 원전에서 앞으로 최소 30년 동안 바다로 방류될 오염수는 그저 어쩌다 가끔 생기는 사고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해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공동 서약이 나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탄소 배출 억제다. 총회의 최종 선언문에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일각에서는 “화석연료의 퇴출”이 포함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그만큼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데 다양한 방법과 접근이 논의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원자력 발전이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발표한 세계 데이터에 의하면 석탄이 전 세계 전기 생산의 35퍼센트 이상을 담당한다. 그다음이 천연가스인데 23퍼센트 내외이다. 약 60퍼센트의 전기를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석탄과 천연가스가 만들어 내는 셈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지난 20년 동안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 현재는 각각 7퍼센트와 4퍼센트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약 10%의 전기 생산을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는데, 과연 원전의 확대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원자력 발전이 석탄과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시장에도 자본의 논리가 작용한다. 원자력이 석탄과 천연가스보다 싸게 전기를 만들어야 대규모 전환을 꿈꿀 수 있다. 원자력은 무엇보다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이다. 기술력 확보는 비용을 초래한다. 또 연료인 우라늄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간섭을 감내해야 한다. 연료 물질로 핵폭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 도상국들이 원전보다 간단한 화석 연료 발전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원전 확대가 결국 신재생 에너지인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의 시장 점유율을 갉아 먹을 가능성도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그나마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나라가 국가적 육성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영원할 수는 없다. 결국은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원전이 비싸진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밀어내는 건 아닐까.
탄소 배출만이 문제라면 원자력이든 풍력이든 화석 연료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자력은 신중하게 선택할 문제다. 체르노필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또 알려지지 않은 어디선가 원전 사고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크기로 다가온다.
중국의 고전인 중용에 집기양단이라는 말이 있다. 양 극단을 파악한 뒤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원전에 관하여 프랑스와 독일은 양 끝단에 있다. 프랑스의 원전 비율은 70퍼센트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20퍼센트 내외임을 생각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다. 반면 독일은 2023년 4월을 기해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절반 이상의 전기를 재생에너지원으로 만든다. 두 나라가 보여주는 양 극단이 인류 전체의 합리적 판단에 밑거름이 되기를.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