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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5월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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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목사] 뗀 떡, 부스러지는 떡

최승민 목사
현 플라워 마운드 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모르고 믿으면 미신(迷信), 무조건 믿으면 맹신(盲信), 자신의 믿음만 옳다고 생각하며 주변 사람이나 다른 결의 믿음의 방식에 대한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는 광신(狂信)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32). 이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한탄하십니다(호 4:6). 기독교의 믿음은 모르고 믿는 미신이나, 무조건 믿는 맹신이 아니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라’고 하는 진리,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세상의 철학이나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으로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행위 자체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함으로써,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성숙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경이 쓰인 배경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떡’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35).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도,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6). 우리 문화에서는 ‘떡’이라고 번역하지만, 고대 팔레스타인이라는 배경에서 본다면, ‘빵’이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단순히 떡이라는 번역을 빵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실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몸을 떡에 빗댈 때, 그 떡은 한 덩이의 떡이 아니라 “뗀 떡”으로 그려집니다. 떡을 뗀다고 할 때, 인절미 떡이나 가래떡을 떼는 모습이 상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빵이라고 한다면, 빵은 떼는 것이 아니라 찢는다고 해야 더 옳은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이 떼어졌다는 표현보다는, 찢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말씀의 의미를 더 잘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떡에 빗대어 설명하시면서, 자신을 “뗀 떡”이라고 하실 때, 어떤 종류의 떡을 떠올렸을까요? 예수님께서 떡으로 자기 몸을 비유하시는 가르침은 유월절 즈음에 주어졌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오병이어 사건은 유월절이 가까울 때 일어났습니다(요 6:4). 이 때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마 14:19).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도 무교절의 첫날이었습니다. 유교절과 무교절은 연달아 지키는 연속된 절기입니다. 이 시기에 먹는 빵은 평소에 먹는 빵과는 다른 특별한 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특별한 빵을 먹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유월절이 가까워져 오면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는 누룩이 들어간 품목을 살 수 없어 곤란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누룩이 들어간 빵을 만들어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팔지도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도시 곳곳에서는 자기 집 어딘가에 남아 있을 누룩까지 제거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교절 기간에 집에서 누룩이 발견되지 않도록 명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2:19).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식당에서 이 기간에는 누룩이 포함되지 않은 빵을 사용하여 요리합니다.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도 예외가 아닙니다. 맥도날드(McDonald’s) 역시 유월절-무교절 동안은 누룩이 포함되지 않은 빵으로 햄버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빵이 어떨까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반죽으로 빵을 만드니 충분히 발효되지 않아 맛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쉽게 부서져 먹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기간 이스라엘의 맥도날드 매출 역시 형편없습니다. 누룩 없는 빵으로 만든 햄버거는 아무도 먹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스러지는 빵을 먹는 시기에 예수님은 자기 몸을 빵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빵에 비유하며, “뗀 떡”이라고 하실 때, 손으로 잡으며 조금만 힘을 주어도 으스러지듯 부서지는 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한 빵에 예수님의 몸을 비유하신 것은 예수님의 몸이 단순히 떼어져 나누어지는 것을 넘어, 찢어지고 부스러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이 찢어지고 부스러지는 고통을 감내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회복시키는 대가가 예수님의 몸이 부서지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 말씀을 배우고, “떡을 떼며(행 2:42)” 교제했다고 한 성경의 기록도 단순히 말씀 안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은 것을 넘어, 자신들을 위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며 사귐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배경을 통해 깊어진 성경 이해를 통해 온 인류를 위해 몸이 부스러지는 고통을 당하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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