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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4월 2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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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라이트 주립대학 | 차인홍 교수

“절망 권하는 세상에 하나님 은혜로 답하다”

차인홍 교수는 한국 장애인 최초로 미국 음대에서 교수로 임용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는 2008년 전 세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여 해외유공동포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2018 펩시 음악상 시상식에서 클래식 분야 ‘올해의 베스트 음반’ 상과 ‘올해의 베스트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2년에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서울시향을 지휘했으며, 작년에는 라이트주립대학에서의 우수한 활동과 업적을 인정받아 대학교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교수상인 ‘유니버시티 프로페서 어워드(University Professor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같이 화려한 이력에도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며 “나는 사랑받은 사람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차인홍 교수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Q. 차인홍 교수

A. 신시내티 대학(University of Cincinnati), 뉴욕 시립대학(CUNY-Brooklyn College)을 거쳐 사우스 케롤라이나 대학(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극적으로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학(Wright State University)의 바이올린 교수 겸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됐습니다.
오랫동안 한인교회를 섬겼고 현재 오하이오 데이턴(Dayton)에 위치한 페어헤이븐 교회(Fairhaven Church)에 출석하며 교회음악 팀에서 연주자와 독주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Q. 크리스천이 된 계기

A.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나 2살 때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으로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제가 아홉 살 때 부모님은 저를 성서재활원에 들여보냈는데 그곳이 마침 의사이시며 장로님 이었던 분께서 설립하신 시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어려 서부터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웠지만, 예수님을 영접했다고는 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늘 주변 교회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의 관심과 지원으로 교회로 인도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교회를 한 번도 떠난 적 없었던 것이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차인홍 교수가 간증과 찬양을 나누고 있다.

Q. 바이올린과의 만남

A. 어릴 때는 잘 몰랐으나 청소년 시기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걷지 못하는 창피함과 불편함, 사회적 냉대,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가난한 집안 형편에서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에게는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재활원에 보내져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긴 했지만, 정식교육은 아니었고, 그 후 스물 두 살이 될 때까지 중·고등학교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대학생이 됐을 때 저는 재활원에서 배운 초등학교 과정이 전부였고, ‘앞으로 정말 세상을 사람 답게 살아갈 수 없겠구나’하는 큰 좌절의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참 힘든 생활을 보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재활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소식을 접한 서울대학교 출신 여자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16살 때는 기술 연수생으로 일 년 동안 일본 장애인시설에서 목공소와 인쇄소 일을 배우고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이올린을 붙들게 됐습니다. 그 후 재활원 친구들과 함께 베데스다(Bethesda) 현악 사중주단을 조직해 본격적인 음악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전과 서울에서 활동하던 중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신동옥 교수님께서 신시내티 대학에 유학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당시 학력이 없어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시점이었는데 절묘하게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린 점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큰 간증이 됐습니다.

Q.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

A. 재활원에서 처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신 강민자 선생님, 그분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당시 형편으로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누추한 곳에 찾아올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아직도 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이 오셨던 것은 제 인생에 하나의 선물이자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를 순수하게 사랑해 주었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도 핸드백 하나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와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전부 함께 감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기도하며 견뎌낸 시간이 고맙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찬양

A. 최근에 찬양 ‘하나님의 은혜’를 연주하기 시작하며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찬양을 듣는데 다른 내용보다도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가사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 가사를 나의 고백으로 삼고, 그 마음을 담아 자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음악 하는 제자들에게 늘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것. 자존감과 성실함, 겸손함을 가지고 묵묵하게 일을 하면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주며,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고 믿습니다. 둘째는 내 음악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음악은 다른 사람과 절대 같을 수 없는 소중하고 유일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Q. 앞의 사역 및 비전

A. 언제나 어떠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고 세우지도 않았지만, 너무나도 크고 많은 일들이 펼쳐졌음을 기억합니다.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인터뷰 할 때 저는 계획이나 비전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저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의 일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만 최근 한국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교회 등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와 간증을 나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데,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과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금의 삶이 가능했기에 이제는 받은 사랑을 되갚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삶 속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용기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겸손한 마음으로 감당하려고 합니다.

Q. 텍사스크리스천뉴스(TCN) 독자들에게 전하는 권면의 말

A.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자신 없이 두려워 떨고 세상을 포기하려고 했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굳세게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겠다고 늘 옆에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늘 깨닫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사람이 갖가지 어려움과 불행 그리고 좌절 속에 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강연이나 간증을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견뎌내야만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크리스천이 갖춰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도 기자 © T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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