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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월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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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삼석 목사] 종말을 희망하라!

방삼석 목사
달라스 뉴라이프 선교교회 담임

오늘날 급격한 기후변화와 예측할 수 없는 세계 정세때문에 파국적인 대재앙의 종말론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아마겟돈 전쟁을 언급했다. 우리의 종말은 참으로 암울해 보인다. 실지로 사람들의 일반적 의식속에 종말이란 희망할 수 없는, 희망해서는 안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론은 희망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의 종말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폐기처분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고 재창조 하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종말은 파국과 대재앙이 아니라, 회복과 희망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의 종말론이 유행하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기독교 종말론을 구성하는 몇가지 성경적, 신학적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천국’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보자. 오랫동안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것을 단순히 장소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구약에서 마지막 날은 다가오는 날(올람 하바아)이다. 신약도 마찬가지이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맨 처음 선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3:2, 4:17)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너희 가운데(엔토스 휘몬, 눅17:21) 이미 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다스림)를 의미한다.1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노릇 하시는 때가 시작되었다는 선언과 같았다. 이방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유대인들에게 천국 선포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하는 현실에 종말을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성령을 약속하셨을 때도 이스라엘 회복의 때가 이때인가(행1:6) 하고 주님께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기대와 다른 하나님의 통치(천국)이 자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개시되고 있는 것으로 선포하셨다.

종말이라는 개념도 구약에서는 세상의 파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이 군림하는 세상질서의 종말이고, 하나님이 오셔서 세상을 새로 고치고 구원하시는 때에 관한 것이었다. 구약에서 종말(다가 오는 날)은 희망의 내용이고 언어였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구약의 종말을 앞당겨 성취하신 것으로 보았다. 그 끝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여기로 달려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능’을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그 무한히 가능한 경우의 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을 방치하실 수 있는까? 죽음은 인류의 필연적인 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자기 아들을 그 필연의 길에 세우셔야 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은 십자가에서 절규해야 했을까? 신정론은 통속적인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전능’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은 전능하며, 세상은 여전히 악과 고통과 사망이 존재한다는 이 모순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개시된 하나님이 통치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빌2:9-11)는 신약의 가장 영광스러운 소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바른 기독교적 종말론은 오늘날 우리 믿음의 정체를 바르게 하는 일에 가장 중요 한 과제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안에서 사는 능력이다. 그것은 전능성에 관한 오해로 기대되는 완벽한 세상이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빌미로 우리의 내면 한 귀퉁에 만들어 놓은 평안의 텃밭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도전하고 몰아 세워 하나님의 왕되심에 순종하게 하는 부르심에 대한 반응이다. 그래서, 믿음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하늘과 땅이 없어지듯, 내 삶과 삶의 현장에 들이닥친 종말이다(칼 바르트). 희망의 종말론은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다. 종말을 희망하고, 그 희망하는 종말을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여기서 사는 것이다.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은 죽음처럼 강해서, 바닷물로도 끌 수 없고 굽이치는 물살로도 쓸어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핵위협도,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어떤 어두운 미래 전망도 종말로부터 다가오는 희망의 빛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의 희망을 빼앗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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