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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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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고운 정 미운 정의 나이테

서정숙 사모 시인
달라스문학회회원

한 달 전 많은 벌이 붕붕거리던 매화나무의 꽃들이 급강하한 북극한파로 얼음꽃이 되었는데 봄기운에 움츠렸던 봉오리들이 꽃을 피우니 다시 벌들이 모입니다. 자연사(自然史)가 인생사(人生史)이듯 손샘 가신 지 한 달입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우리교회 예배에서 오랜만에 부른 찬송입니다. 70년대에 한센환자들과 삶을 함께한 구라선교회의 의료선교사 베넷 원장님과 Hunn 선생님이 은혜롭게 부르던 찬송입니다. 경북 지역의 도로가 열악하고 나라가 가난한데 천형병으로 불리던 한센병자를 찾아내어 치료하던 분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나에겐 부끄러운 고백의 찬송입니다.
우리교회의 80 중반 연세의 안수집사님은 매주는 못 오시지만 2시간, 왕복 4시간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해서 예배드리러 오십니다. 손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안부를 물으시기에 손 사모님 연락처를 드렸습니다. 위중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방문했더니 또렷하게 알아보셨는데 다음 날 아침에 소천하셨다고 …달라스 최초로 문화원을 만드신 손 선생님 덕분에 바둑동호회에서 취미가 같은 분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늘 고마웠다고 하십니다. 추모예배에도 그 멀리서 오셨기에 더 반가웠습니다. 거의 20년 세월을 정과 고마움으로 기억하신 집사님의 마음에 뭉클했습니다.

언론인 손용상님의 육신을 이 땅에서 보내드리던 날의 추모 시를 옮깁니다.

매화꽃에 벌들이 붕붕거리는 달라스 1월의 아름다운 날
상추 드시러 오시겠다고 오케이 하시더니
북극 한파 닥치기 전 아침에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마켓에서 아시안만 만나도 반갑던 2000년
달코라 방송을 통해 모인 달라스문학인들 앞에
홀연히 나성에서 날아온 손샘
기꺼이 내주신 코리안 저널 지면은 예술인의 열린 광장
기름진 글 텃밭이었습니다
이민자의 애환과 고향 그리움이 자라 꽃피고 씨 맺고
등단과 문학상으로 아지매, 아재, 할매, 할배들은
시인, 수필가, 소설가, 칼럼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코메리칸 이민 문학을 앞서서 달린 손샘
장,중, 단편소설, 운문, 칼럼, 시, 시조, 동시
멈출 수 없었던 오른손 글쓰기로 출간된 20여 권
이해득실, 흥망성쇠, 희로애락 육신의 곤고함이 오히려 기폭제로
각종 문학상 수상은 ‘늦게 핀 꽃의 더 진한 향기’
손뼉 치기 바빴던 우리

“펜을 들어 머리 녹을 닦고 10년을 씨름, 전업 작가로의 귀환”.
그 뒤안길에는
이미 주님 품에 가신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뿌리가 굳건해야한다.”는 엄니의 임종 유언
늘 든든한 아내의 “노래를 부르세요” 그리고 가족들의 배려가
코메리칸 손샘을 든든히 채웠습니다

폭염의 땅 달라스에 여린 날개 하나가 품은 솔 씨
해외 한국 문인의 변함없는 푸른 정기
본향과 세계의 징검다리 한솔 문학 창간과 9호까지의 출간
베난시오, 손용상, 73년 신춘문예 당선 소설, 방생에서
“나무라…깊은 대지에 자양의 흡반을 드리워 천공을 향해 치솟는”
이제 주님에 의해 가지가 처지고 분재 되어 아담한 소나무
그 단아한 베난시오를 받으신 주님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도 가겠지요. 잊히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달라스 토종 글쟁이들은 잊지 못할 겁니다
적당히 푸시하던 손샘의 그 말씀
“그냥 편케 쓰세요.”
글 쓰기가 싫어질 때도 묵은둥이들은 기억날 겁니다

하루 새 42도나 떨어진 기온에 첫눈
또 그 눈도 녹고 한파가 물러간 따듯한 날 2024년 1월 18일
인정과 격려로 자란 풍성한 한인 예술의 도시 달라스
예술인들이 마음을 모아 손샘의 육신을 보내드립니다.
Time To Say Goodbye!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이제 안녕을 말해야 하는 쉽지 않은 시간에도 생각나는 말씀
“허~ 참! 다 그런 거지 그냥 편케 하세요”

추모 시의 어휘들은 손용상 선생님의 20여 권의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명절이 온다니 더욱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손끝이 저려온다.”고 <엄마의 초상>에서 읽은 고인의 글인데 마침 명절입니다. 고운 정 미운 정을 나이테로 묻은 묵은둥이의 세월은 옥토가 되가듯 합니다. 오대양 육대주 선교사님들의 평안과 이북에 억류된 선교사님들이 속히 풀려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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