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 F
Dallas
목요일, 1월 16, 2025
spot_img

[전동재 박사] 사주팔자와 후성 유전학

전동재 박사
Dallas Baptist University 겸임교수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셋째 아들을 뱃속에 품은 곽덕순은 어느 날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다. 마을 근처에서 교통 사고가 있었는데 남편의 용달차에 불이 붙는 바람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남편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 덕순은 화재로 인해 새까맣게 그을려 실려 나오는 남편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오열한다. 그리고 며칠 후 덕순의 집에서 남편의 혼을 달래기 위한 굿이 벌어졌다. 넋 놓고 앉아있던 덕순에게 박수무당은 남편의 혼을 빙의 하여 말을 내뱉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말이 문제였다. “내가 장수 팔자인디… 과부살을 못 이기는구먼.. 원통하고 분하다… 임자 나 가여.” 박수무당이 뱉어 놓은 이 한마디가 상황을 버티기도 힘든 덕순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덕순에겐 남편 잃은 슬픔을 추스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무당의 말인 즉슨 남편 자신은 늙어서도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사는 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배우자인 곽덕순의 과부 팔자가 너무 세서 자신이 그렇게 죽게 될 운명이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들은 덕순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박수무당은 하얀 천 한가운데를 몸으로 가르며 그 위에 놓여 있던 돈을 수거해가며 굿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이 때 덕순은 손을 뻗어 박수무당의 어깨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용식 애비는 경상도 사람이고 경상도를 벗어나 본 일이 없는 사람인디 어찌 전라도 말을 쓴다요… 뭐라고? 남편 죽은 게 나 때문이라고? ” 당신이 뭔데 나의 운명을 함부로 운운하냐며 거세게 따져 물었다. 말하자면 빙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사투리부터 틀려버렸다는 팩트 체크를 한 셈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덕순은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따위가 자신을 길들이지 못하도록 의지를 다해 살아 가기로 결단했다. 하지만 팔자라는 폭력성은 한 여인이 홀로 세 아들을 키워 나가는 삶에 곳곳에서 발생했다. 덕순이 생계를 위해서 식당을 열자 “저렇게 독하니까 남편을 잡지. 과부 팔자가 괜히 있어?” 가시 돋힌 말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때마다 “팔자가 이끄는 인생”이 아닌 자신이 의지적으로 선택한 인생을 살아 냈다. 그리고 세 아들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게 된다.

사주팔자는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서 파악하는 출생 년, 월, 일, 시를 일컫는 용어이다. 한 인간의 미래가 출생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 믿는 무속인들은 한국 사람에게는 팔자란 수긍하고 살아가야하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의 틀 혹은 그릇 같은 것이라 믿는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 그것에 길들여 져야만 안심이 되는 속성이 있다. 앞에 모셔 두고 무릎 꿇을 만한 존재를 찾아야 만족이 되는 허기진 영혼의 실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본질적 불안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형성된 빈자리이다. 창조주의 자리라 어떤 것으로 채워 넣을지라도 공허하긴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만으로 만족되는 자리이다. 이 빈자리는 영적 문제이나 실체를 심리학에서 감지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불안으로부터 기인된 행동으로 미래를 통제하려 심리를 조절 환상 (Illusion of control)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스라이팅, 그루밍 범죄 이런 단어가 이젠 귀에 익숙하다. 신비라는 영역도 권력이나 장사 심지어 범죄의 영역이 되어 버리는 예는 허다하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어떤 존재에 자신을 길들이도록 스스로를 내어 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타락의 증거일 뿐이다.

유전자(Gene)도 타고났다는 점에서 마치 운명이나 팔자처럼 나를 생물학적으로 규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해왔다. 우리는 유전자가 말해주는 것 자체이고 유전자의 표현형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후성 유전학(Epigenetics)의 출현으로 인해 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후성 유전학은 ‘유전자 위에 (Above Genetics)’ 라는 뜻이다. 유전자가 우리 몸을 그대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적 선택과 주위 환경이 그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으며 그 조율된 패턴이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학문분야이다. 한마디로 유전자 위에 후생 유전학이 있는 셈이다.

오늘 나의 선택이 타고난 운명의 틀로 비유되는 유전자 “위에서;Above” 일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은 이제 “당신의 어머니가 먹은 것이 곧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r mother ate)”라는 말로 확장되었다. 오늘의 선택이 나를 넘어 내 자녀에게 까지 정해진 운명의 틀이나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과학도 인정하는 마당에 팔자 소관이란 말은 물론이거니와 흙수저, 금수저와 같은 수저론에 자신을 규정하는 것도 적어도 반은 틀린 이야기가 되겠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