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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4월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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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벧엘로 가다 (1):
피스갓트 제에브 (Pisgat Zeev)

김세권 목사
조이풀 한인 교회 담임

지금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볼 때 남쪽에 있는 곳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썼다. 이제부턴 북쪽으로 올라갈 참이다. 지금부터 가는 길 끝에는 벧엘이 있다. 먼저 벧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장소 한두 곳에 들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예루살렘 도심을 지나면서 막 족장로에 들어서니, ‘피스갓트 제에브’(Pisgat Zeev)라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 했다. 반복되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독서백편 의자현’이라 했다. 순서대로 하자니 또 말하는 것을 양해바란다.

원래 ‘피스가’(비스가)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다. 모세가 세상을 떠날 때 오른 산 이름이 ‘피스가’였다. 문제는 이게 느보산과 다른 또 다른 어떤 산의 이름으로 아는 경우가 있단 거다. 이건 아니다. 실제로 ‘피스가’(비스가)는 ‘산꼭대기’ 또는 ‘정상’이라는 뜻을 지닌 일반 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모세가 마지막으로 등산했던 곳은 느보산의 꼭대기였다고 해야 옳다.

‘피스갓트 제에브’는 직역하자면, ‘늑대의 언덕’ 또는 ‘산’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이 후손을 축복하면서,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로 표현한다. 그 후에 베냐민 지파의 상징은 늑대가 되었다. 동네 이름이 이리 붙었단 건, 이곳이 왕년에 (아주 옛날에) 베냐민 지파가 살던 땅이란 의미다.

실제로 베냐민 지파는 대단히 강했다.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력이나 기질이 장난 아니었다.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사사기 20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가 살던 기브아에서 레위인 하나가 봉변을 당했다. 불량배들이 그의 첩을 강간했다. 결국 여자는 죽었고, 분개한 레위인이 이스라엘 온 지파에게 기별했다. 이른 바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이 언급한 ‘공포의 본문’(Text of Horror)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내전이 벌어졌는데, 마지막에는 베냐민이 졌지만, 이전의 두 번의 전투에서는 쪼그마한 베냐민이 11 지파와 싸워서 다 이겼다. 베냐민이 이렇게 강했단 뜻이다.

베냐민 지파는 북쪽의 센 지파인 에브라임과 남쪽의 강자 유다 사이에 끼었다. 어찌 보면, 두 지파 사이에서 베냐민이 완충 역할을 했다. 어쩌면 베냐민은 당시에 정치적인 이유로 두 지파 사이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건, 베냐민이 중재자의 역할을 잘 했다는 점이다. 중재니 뭐니 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베냐민이 힘이 있었단 건, 그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나왔다는 사실을 보면 안다. 정치적인 논리로만 보면, 두 지파가 서로 왕을 내겠다고 할 순 없었을 거다. 유다가 왕을 세우겠다고 하면 에브라임이 가만있지 않았을 거고, 반대 상황이라면 유다가 실력행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둘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했고, 중재하는 지파인 베냐민이 어부지리로 왕을 가져갔다. 물론 나중에 유다 지파가 왕 자리를 가져갔지만, 당시 작은 지파인 베냐민이 보여준 능력을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걸 단순히 정치 상황으로만 해석한다면 그건 그냥 겉만 핥는 거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고 믿는다. 실제 상황에서 이런 인간의 암투가 벌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그걸 요리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에 깊숙이 개입(Divine intervention)하셨다. 사울이 잘했으면, 그냥 그대로 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실패했다. 아직 제대로 가나안에 정착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왕의 실각은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세워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큰 위협인 블레셋을 물리친 왕은 다윗이 거의 유일했다고 보면, 하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모든 상황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들여다보시고, 다윗 왕조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놀랍다.

피스갓트 제에브를 지나면서, 하나님이 역사 속에 쌓으신 벽돌을 본다. 그건 아주 단단했고, 사람의 조브라운 지혜로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나님은 역사를 쌓으신다. 인간은 켜켜이 쌓인 벽돌에 섞여서 숨 쉰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면, 벽돌이 인간을 누른다. 그러니 힘든 사람도 많았다. 이런 역사를 빨리 알면 다윗처럼 왕도 되고 그런다. 물론 고생은 했지만 말이다. 혹시 누가 아는가? 사람의 모든 고생도 결국은 쌓인 벽돌의 한 부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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