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를 상징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텍사스의 푸른 초원을 힘차고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젊은 말 무스탕이라고 한다. 달라스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동부의 뉴욕이나 워싱톤 디씨, 중서부의 시카고, 서부의 로스 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메트로폴리스가 풍기는 이민자 도시의 역사와 문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고 낯설게 다가온다.
“달라스: 그때와 지금”(2001, Thunder Bay Press)을 쓴 ‘피츠제랄드’(Ken Fitzgerald)에 의하면, 근 19세기 중반까지 달라스는 텍사스 대평원의 일부였고, 트리니티 강과 주변 호수가 주위를 소들이 무리 지어 평화롭게 살고, 이동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끝없이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대평원위에서 어떻게 21세기 세계도시가 성장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달라스를 알아야만 할까?
◆ 달라스 시의 탄생과 성장
1841년 테네시의 변호사인 ‘존 브라이언’(John Bryan)은 북 텍사스에 흐르고 있는 트리니티 강가에 내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교역거점으로 달라스가 입지적으로 우수하다고 판단하고 시를 세웠고, 부통령 조지 M.달라스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자취는 시 중심에 있는 “파운더 광장”(Founder Plaza)에 가면 그가 세운 통나무집이 보존되어 있어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다.
1600년대 초 미대륙에 정착하기 시작한 유럽인들이 동부해안에 도시와 마을을 조성하면서 토지를 나눌때 “격자형 기법”을 사용해 도시를 배치하였다.
달라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1844년에 측량기사 ‘두마’(Duma)가 토지를 측량해서, 1/2마일로 블록을 나누고, 트리니티 강에 직교하는 방향으로 가로망을 배치했다. 이때 구획한 격자형 배치형태가 오늘날에도 시 중심부의 도로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 후 텍사스 의회는 1856년 2월 2일 달라스 시 조례로 이 도시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달라스는 주변 농촌지역을 지원하는 서비스 거점도시로 빠르게 성장했다. 달라스가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지역으로 광대하게 뻗어나 갈 수 있는 교통망 건설이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달라스는 1873년에 텍사스 최초의 철도 교차점이 되었다. 1874년 처음으로 개통된 철도 덕분에 달라스는 미국 남서부 지역을 선도하는 물류배송의 중심이 되었으며, 마침내 1890년에는 38,067명으로 텍사스에서 인구 규모 면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의 산업과 인구 집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전까지 미국 북동부 지역 오대호 주변의 피츠버그와 펜실베니아, 오하이오주의 영스타운 등의 도시는 철강산업과 중공업으로 번성했던 지역이다. 그러나 1950년대, ‘60년대 이후 제철 제강산업이 급격히 침체하면서 공장문을 닫자 인구도 크게 감소하면서 녹슨 철강을 상징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변했다. 이 곳을 떠난 산업과 일자리, 인구는 남부의 따뜻한 ‘선 벨트(Sun Belt)’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국 남부의 ‘선 벨트(Sun Belt)’는 플로리다, 텍사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주 일대 지역을 지칭한다. 이 지역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으로 인구와 산업이 이주해 오면서 성장세가 두드러진 지역이다.
미국 남부 텍사스의 더운 지역에 위치한 달라스도 ‘선 벨트’에 속하며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서도 현지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기업의 ‘선 벨트’지역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아마도 미국 ‘선 벨트’의 거점도시이자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대륙 진출의 관문 도시인 달라스의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 오늘날의 달라스
오늘날 달라스는 세계최대의 달라스 포트워스(DFW)공항과 사통팔달의 교통망 체계를 갖춘 도시로 성장했다. DFW공항에서는 4시간 이내에 미국 어느 도시든 도착할 수 있으며, 한국과의 직항편도 운항하고 있어 달라스는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달라스와 같은 도시를 꼽으라면 미국남부의 교통 허브인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가 있을 것이다. 애틀란타처럼 달라스도 풍부한 지역 생산품을 북쪽과 동쪽으로 수송할 수 있는 전략적, 지리적 거점이 되었다. 덕분에 기업형 면화재배는 물론 다양한 산업을 이끄는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농장주들에게 현금을 벌어주는 주요 농산물이었던 기업형 면화의 거래가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댈러스 중심부의 “엘름 스트리트”(Elm Street)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돈 많은 상인, 실업가들이 “엘름 스트리트”를 자주 방문했고, 저녁에는 교제하고 비즈니스를 추진하는 거리로 발전했다. 또한 달라스가 가죽과 소거래의 세계적인 중심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교통과 물류수송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이에 19세기 말에는 은행과 보험업이 달라스의 주요 산업으로 등장했다. 20세기 들어서 텍사스는 서적, 약품, 보석, 주류도매업, 말 안장 제작을 선도하는 도시가 되었고 면화 추출업 규모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업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경제적 번영을 배경으로 1907년에는 달라스 최초의 철강 고층건물인 15층 규모의 신 고전주의 스타일의 보험회사 “프레토리안”(Praetorian) 빌딩이 세워져 현대도시로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1914년에는 포드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으며, 1920년대에는 도시계획위원회가 처음으로 구성되었다. 그와 함께 멕시코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큰 도시로 성장하면서 석유산업의 금융업무를 지원하는 중심거점도시로 점차 발전하여 왔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협력과 시 지도자의 리더쉽이 달라스 시가 21세기에 글로벌 도시로 발돋움하는 도시건축적 문화환경을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