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단연 스위스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스위스 시계는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하며 명품의 상징으로 군림했습니다. 정교한 태엽과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그들의 기술력은 난공불락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전자시계가 발명되었습니다. 전자시계를 처음 개발한 곳 역시 스위스의 한 연구소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스위스 장인들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시계는 모름지기 태엽과 톱니로 가야지, 건전지로 가는 게 무슨 시계냐”며 혁신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이 기술을 가져간 일본의 세이코가 세계 시장을 재편했고, 수만 명의 스위스 시계 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원리를 시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익숙한 방식, 즉 ‘내 경험의 태엽’을 신봉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과거의 기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척박한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쌓아온 수많은 노하우와 자수성가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오늘’ 닥친 새로운 영적 위기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당혹감에 빠집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전도 여행을 다니며 귀신을 쫓아냈던 성공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전에도 됐으니 이번에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에게 명확한 진단을 내리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Kind)가 나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종류’를 뜻하는 헬라어 ‘게노스(γένος)’는 태생, 혈통, 혹은 유전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의 수단이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통제 불가능한, 뿌리 깊은 영적 대적의 실체를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도 이런 ‘게노스’들이 존재합니다. 이민 생활 중에 마주하는 자녀와의 깊은 갈등, 깨어진 부부 관계의 신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중독의 사슬,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절벽 등입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배후가 있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가 다른 방법보다 ‘조금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 기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최근 이사를 하며 이 진리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20년 넘게 살았던 모빌홈을 떠나 교회에서 가까운 루이스빌에 새로운 집을 구입했습니다. 가격이 싼 집이고 구조가 마음에 들어 기도하면서 일단 구입하고 보자는 식으로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인스펙션을 해보니 무려 80군데나 수리해야 할 항목이 나왔습니다. 엎친데 덮친것은 살던 집에서 짐을 빼고 나고 이전에 보지못했던 수리할 영역이 너무 많았습니다. 업자에게 견적을 뽑아보니 집값에 비해 공사비가 너무 비쌌습니다. 결국 직접 DIY 로 수리를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연말에 많은 교회일과, 3주간의 독감, 기록적인 추위로 공사는 지체되었습니다. 결국 2월 말이 다되어 공사가 끝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주택시장이 얼어붙어 집은 거래되지 않는다는 소식은 더 저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주님, 답이 없습니다. 목회를 해야 하는데 집에 대한 걱정이 저를 짓누릅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절망의 상태에서 드린 한숨 섞인 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친 제 마음에 상황을 초월한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식으로 부동산 리스팅을 하기도 전이었는데, 창고에 버려져 있던 낡은 ‘For Sale’ 간판을 아내가 혹시나 해서 걸어둔 것을 보고 구매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로부터 2주만에 클로징을 하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강조하신 이유는 기도가 무슨 신비한 마술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라는 존재를 ‘플러그 인(Plug-in)’ 하는 연결입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도 배터리가 방전되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제자들의 문제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원’이 끊겨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명철을 의지했고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거대한 연합군이 침공했을 때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 절대 의존의 고백이 들려질 때, 하나님은 복병을 두어 대신 싸우셨습니다. 4살 때 소아마비 판정을 받고도 달리기로 세계를 제패한 윌마 루돌프의 기적 뒤에는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며 딸의 다리를 매일 만지며 기도했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우리는 기도 없이도 사역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익숙한 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우리를 영적 고사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지금 무엇이 여러분을 흔들고 있습니까? 자녀입니까, 물질입니까, 아니면 남모를 질병입니까? 내 계산과 방법의 태엽을 잠시 멈추십시오. 대신 기도의 전원을 하나님께 꽂아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30분 일찍 일어나 새벽을 깨우며 기도의 근육을 키우십시오. 직장으로 가는 길, 혹은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잠시 교회에 들러 무릎을 꿇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리가 바로 마귀의 역사를 물리치는 승리의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던 ‘이런 종류’의 어둠은 반드시 떠나갈 것입니다. 주님의 손이 오늘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우리를 잡아 일으키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