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가운데 최악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최악의 순간은 출애굽 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겪은 광야 생활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출애굽하게 하셨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이적들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신 은혜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죄를 짓는 것과 하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것은 다릅니다.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범하는 죄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충분히 받아 누리고 있는 중에도 그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상 그 어느 시대의 민족들보다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를 지내는 세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처참함 자체였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순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이키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을 기억하곤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가르쳤던 것이지요. 이 신앙 고백을 빼놓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 주셨던 은혜는 중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명한 독일의 구약학자 폰 라드(G. von Rad)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서 나타남을 지적하며 그것을 “역사 신조(historisches Credo)”라고 명명했습니다.
광야에서 베풀어졌던 은혜가 특별한 이유는 최악의 순간에 베풀어진 최고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이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반응합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수없이 건져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광야 생활에서 인도함을 받고 있음에도 늘 불평입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삶이 더 나았다며 그것을 그리워합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서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광야로 이끈 모세를 죽이고 광야로 돌아가자고 하기도 합니다.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끄러움 때문에 그 순간에 부어지는 은혜가 더 귀한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으로는 광야에서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그들을 품으십니다.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느 9:1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통하여 보호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을 통하여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 불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느 9:20). 또한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시며 먹이셨고, 목마를 때 물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필요하다면 기적과 같은 일이 일상이 되게도 하셨습니다. 사십 년을 지내는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도 부르트지 않은 것이지요. 참 놀라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은혜는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세대의 후손들이 이 시대를 되돌아볼 때 가장 은혜를 받았던 것은 단지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돌아보아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출애굽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삶에 부끄러움만 켜켜이 쌓아가는 그러한 출애굽 세대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켜켜이 쌓아가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최악의 순간에 최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어떠한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며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은혜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최고의 은혜를 베푸시며 이끌어가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 가운데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쓰러질 때도 동일하게 최고의 은혜를 베푸시며 이끌어가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며 복된 삶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