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볼디 마을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곳은 모두 천주교 지역이었습니다. 수십 년을 천주교회가 담당했던 지역이었지요. 적어도 그 지역 모든 이들이 자기들은 천주교회에 속했다고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이곳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개신교를 소개하고 싶은 마을 청년이 이 안건을 각 마을 원로들 모임에 올렸을 때,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이 지역에 다른 종교가 들어오면 이 지역이 둘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였지요. 그런데, 수 년 후에 개신교가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더니 12개 마을에 8개의 개신교 교파가 들어와 각기 자기 교회를 세우고 예배 드리기 시작하더군요.
이렇게 된 결과는 모든 마을이 12개 교회로 갈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가깝던 친인척 사이도 등을 돌려 버리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자기들 만이 정통 기독교회이고 다른 교회는 아니라는 게 설교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는 이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왜 선교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였던 지역이 서로 반목하며 불편해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노인들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복음 때문이 아니라 교파 간의 경쟁 때문에 말입니다.
신약시대의 로마제국도 현대와 마찬가지로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상태였습니다. 부부 관계나 부모와 자식 관계가 견고하지 못한 아주 취약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중상류층 중에는 가정 문제를 고민하던 자들은 견고하고 안정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유대교나 기독교에 관심을 갖고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당시 해체 지경에 있던 가정들을 다시 견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걸 본 거지요.
이 시대도 모든 것이 해체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절대적” 이란 단어가 어느새 구시대의 유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도 해체되어 상대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거룩함” “순결” 등의 단어들이 냉대받게 되었구요. 이렇게 해체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가장 타격을 받은 게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이 해체됨으로 말미암아 식구들의 마음이 상실감과 혼동스러움으로 채워집니다. 또한 부모와 자식 간에, 부부 간에, 형제 간의 관계가 망가진 채 살아가는 가정들이 ‘우리는 괜찮아’ 라는 커튼으로 가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해체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미 정서적, 정신적으로 해체되어 있는 가정들이지요.
그러면 이 시대의 교회는 해체 문화로부터 안전한 지대일까요? 불행히도 그렇질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망가진 모습을 어줍짢은 “경건함” 이라는 망토를 걸치고서 자신들은 괜찮다는 인상을 주려 합니다. EBS 교육방송 중에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수 년 전에 방영되었습니다. 사춘기를 겪는 세대를 포함한 모든 세대가 관여된 가정에서 생긴 관계의 고통을 어떻게 풀어가는 가를 보여준 방송이었지요. 그런데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의 고통을 겪는 가정 중에 기독교 배경을 가진 가정도 적지 않게 나오더군요. 이 말은 이 시대의 기독교 가정도 다른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는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교회가 이 시대의 해체 문화에 취약한 가정을 보호할 뿐 아니라 건강한 가정으로 지켜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장주의에 매몰되어서, 교회 식구들이 속앓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무너져 내린 후에야 뒷수습하느라 진땀 빼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걸로 압니다. 교회와 가정이, 그리고 일터가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야 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해야 가정이 건강하다는 명제를 반드시 교회가 붙들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렇게 교회와 가정 모두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가족에게 초점을 맞추는 교회공동체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해체된 가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회복되어 또 다른 가족들을 돌보는 건강함을 갖추기를 바라는 거지요. 이렇기 때문에, 가정의 회복과 건강성을 중심 가치로 잡은 겁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시간을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도록 그 프로그램을 운용할 길을 모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도입한다고 할 때, 그 프로그램이 가족의 건강에 이바지를 하는 지를 검토하고, 그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정이 교회의 기초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 중심이 핵심 가치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 가치의 무게를 조율해 한다는 겁니다. 잘못하면, 가족 중심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어서, 교회의 프로그램이 무시될 위험이 있다는 거지요. 그동안 가족의 문제를 등한시했던 걸 교회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프로그램을 가족을 위하여 무조건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요.
오히려 온 가족이 상의해서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여부를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식구들과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가족 중심’이라는 핵심가치를 지키는 게 되겠지요. 이런 면에서 교회 지체 모두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과 삶에 관한 연구와 나눔이 소공동체 안에서 풍성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