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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3월 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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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사모] 카파도키아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소아시아라 불리는 튀르키예는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 나라다. 천의 얼굴을 한 튀르키예는 동양의 끝과 서양의 끝에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지방 도시를 순회하며 선교하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카파도키아를 방문했다. 카파도키아는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수많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카파도키아는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있는 특별한 장소로,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요새였다. 그곳은 높은 바위들로 이뤄진 신비한 지형이다. 바위들 대부분은 버섯 모양이다. 그중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세 개의 버섯이 붙어 있는 모양을 한 버섯바위가 유명하다. 그 바위들을 마주했을 때 외계의 다른 별에 온 듯했다. 세밀하게 세공을 한 듯 서 있는 버섯 모양의 바위들이 신비했다. 수많은 바람이 지나가고 폭풍으로 다듬어진 바위들이 나와 일행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광이 연출되었다. 그 지역의 바위들은 오래전, 세 번의 화산폭발로 응회암과 현무암으로 이뤄졌단다. 괴뢰메 계곡에 풍화와 침식작용이 반복되면서 괴석들이 만들어졌다. 그 인근에 사람들이 살던 곳이 있었는데 바위를 파서 집을 만들었다. 그런 곳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바위들은 특별히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질이 부드럽다. 비가 오면 더 부드럽고 단단하게 되는 특성이 있어 굴을 쉽게 팔 수 있단다. 사람이 거주했던 곳에 계단과 방, 창문을 만든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돌로 만든 집들은 히타이트 시대에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기원후 새로운 주민을 맞이하는 계기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이주했다. 기독교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만든 피난처가 있었다. 안내자를 따라 지하도시 데린쿠유에 들어갔다. 데린쿠유는‘깊은 우물’이란 뜻이다. 그곳에 지하도시를 형성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그 당시 2만여 명의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의 지하도시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 박해를 피해 거주했던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지하에 굴을 파고 그곳에서 은둔하고 살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박해를 피해 모두 동굴에 은둔한 것은 아니었다. 핍박과 맞서 신앙을 지키며 순교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의 상황에 따라 튀르키예 역사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시기라 할 수 있다.
동굴 속 지하도시를 빠져나올 때, 입구를 기억하지 못하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길이었다. 지하도시는 개미굴 같은 동굴을 120미터까지 팠다고 한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지하 55미터, 지하 8층까지 공개되었다. 지하에 마구간과 공동묘지, 맷돌 같은 돌이 있었다. 그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안으로 피신해 동굴 입구를 막는 돌문이 있었다. 지금은 20여 개의 돌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적이 침입해 오면 돌 안으로 피신하고 돌문을 막았단다. 출입구를 안다고 해도 동굴에 한 번 들어가면 나갈 때 출입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 나와 팀원들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잡고 몸을 숙이며 다녔다. 1970년에 일본인 관광객이 그곳에 들어갔는데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단다.
지하 생활은 최소한의 필요조차도 충족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신앙을 지켰는지 아이러니다. 그 지하에도 통풍 역할을 하는 긴 통로가 있었고 간혹 창문이 보였다. 위로 환풍기 역할을 하는 통로가 있어 호흡이 가능했던 거였다. 20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는데 발견된 것이 십분의 일 정도라고 한다. 지하도시의 신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삶의 다양한 골목길 지나며 때론 데린쿠유보다 더 깊고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마주한 적도 있을 테다. 골목길에서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은 적도 있으리라.
카파도키아의 우치히사르는 천연 요새로 가장 높은 지형이다. 우치히사르는‘세 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지금도 침식과 풍화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제국의 침략과 전쟁이 많은 곳으로 상흔이 숨 쉬고 있는 특별한 장소인 듯했다.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기에 주변국들의 침략 대상이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비둘기집이었다. 그 지역에서는 비둘기를 키워 배설물을 비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곳에 한국어 간판으로 된 순두부 음식점이 있었다. 나와 일행은 어찌나 반갑던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인은 한국인이 아니라 현지인이었다. 순두부 음식점을 운영하며 그 땅을 지키고 있단다.
자연이 오롯이 숨 쉬고 있는 카파도키아를 지나며 그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묵상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이 튀르키예 땅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길 갈망한다. 전쟁의 상흔이 숨 쉬는 카파도키아 땅에 복음으로 인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데린쿠유에도 하나님의 봄 햇살이 자늑자늑하게 내려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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