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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3, 2024

[안광문 목사] 절망과 어둠이 다가올 때

안광문 목사(생명샘교회)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살다 보면 항상 희망과 생기 넘치는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 충만하게 지내는 때가 있는가 하면 영적 어려움에 빠져 낙심하면서 지낼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적 어려움에 빠져서 낙심한다는 것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낙심과 낙망에 빠졌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의 말씀을 보면, 엘리야는 극심한 낙심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제단의 제물을 태우면서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신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을 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가장 큰 기대를 가졌던 사람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엘리야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엘리야는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뿐만 아니라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열왕기상 19장으로 와서 그 기대가 산산조각 났을 때 기대가 컸던 만큼 누구보다도 더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엘리야는 더 이상 삶을 계속하겠다고 하는 의욕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왕상 19:4) 이것이 엘리야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절망 가운데 있는 엘리야를 누가 위로할 수 있을 것이고 누가 엘리야에게 삶의 의욕을 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도망치느라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가 극에 달한 엘리야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공급하셨습니다. 이 양식은 엘리야의 육신을 회복시키셨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통해 40일 동안 걸어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까지 갈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함께하시면서 도우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엘리야에게는 새로운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됐습니다. 엘리야는 정말 거짓말처럼 다시 회복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엘리야의 회복이 가능하게 됐던 것입니다. 우리도 삶 가운데 엘리야만큼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온갖 어려움에 봉착해서 아무리 뚫고 지나가려고 해도 나가떨어지고 마는 참담한 상황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도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도 하고, 자포자기하고 드러누워 버리기도 합니다. 위로받고 새 힘을 공급받기 위해 나름대로 누군가를 찾아서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적 좌절은 영적 능력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 능력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잠겨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영적 좌절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겉으로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마치 마약 성분이 사람들을 잠깐 황홀하게 하는 것처럼 환각 속에서 잠깐 힘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뿐입니다. 그 약효가 사라지면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한 좌절감에 빠지게 될 뿐입니다. 우리 삶 속 이런 영적 위기와 좌절감이 찾아올 때 누구를 찾아가나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명상, 요가, 점, 미신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유명 역술인에게 점을 보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0”은 “00000”처럼 아무리 많이 있더라도 그저 “0”일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은 “0”과 같아서 아무리 많이 사용한다고 해도 영적으로 좌절에 빠진 사람들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00000”을 만들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0”들 맨 앞에 “1”이 붙게 되면 그 “00000”은 “100000”이 되므로 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또 다른 “0”들이 붙을수록 더 큰 숫자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서 영적 좌절을 극복하게 되면 나머지 모든 노력들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좌절과 고뇌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구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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