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잠5:11)
여기 음녀의 유혹에 빠졌던 사람이 “한탄하여” 자신의 잘못되었던 삶을 자책하면서 “내가 어찌하여~하지 않았던고, ~하지 않았던고..” 후회하는 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후회’하면, 옛날 중국의 주자(朱子)가 말한 열 가지 후회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소불근학노후회”(小不勤學老後悔)-젊어서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하게 된다.
“색불근신병후회”(色不勤愼病後悔)-방탕한 생활을 삼가지 않으면 병들어서 후회하게 된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방탕한 생활 후에 병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살이 마르고 가죽만 남아 신세를 망치고 나서 울부짖겠느냐?”
아주 사실적(reality)으로, 우리의 피부에 와 닿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쇠약할 때”
몸도, 마음도, 인생도 전부 망가진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젊어서 힘이 왕성할 때는 자신의 정력이 백년, 천년 갈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쇠약해지고, 늙어져 쭈그러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이 걸어가야 할 필연의 길이며, 당면해야 할 현실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게”(벧전1:24)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스스로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너무나 많은 정력을 쏟아내게 되면 더 빨리 늙고 병들고 망가지는 것은 필연인 것입니다.
“신세 망치고 나서” 후회하고, 탄식하고,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너무 늦게까지, 여기 말씀같이 “마지막까지”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후회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칠십인경(LXX)의 번역처럼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가슴을 치고 통회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죄악을 자복하며 마음과 삶의 목적을 바꾸고 전환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회개만이 회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호6:1-2).
“주님, 나로 착각과 어리석음에 빠져 귀중한 시간을 방탕함에 허비하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