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 부모와 자녀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라도 그렇다. 누구나 자기 몫의 영역이 있기에 자기 외에는 감당할 수 없다.
몇 년 전에 작은 아이는, 섬기는 교회에서 아프리카 르완다에 갔다 왔다. 그곳에서 선교와 봉사활동 중에 사고가 있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다가 아들이 다리를 많이 다쳤다. 부상한 다리로 이틀에 걸쳐 혼자 LAX에 입국했다.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서 어떠한 응급 처치도 없었다. 아들은 부상한 상태로 선교 활동을 마치고 입국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 무릎 반월판 연골 절개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무릎 여러 곳이 파열되어 수술이 복잡할 것이라는 주치의 소견이 있었다. 타인의 인대를 이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착잡했다. 집도의가 수술 들어가기 직전에 아들의 사인을 추가로 받았다. 아들을 염려하는 남편과 나에게 아프리카 아이들 대신 자기가 다쳐서 다행이라며 감사하단다.
예정과 달리 모든 상황은 복잡했고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들 대신 무릎 수술을 받을 수도, 아파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들을 위해 기도드리는 일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수술 후 재활 치료 중에 팬데믹이 발생했다. 아들은 치료를 다 받지 못하고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프리카로 1년 동안 선교를 떠났다. 코로나로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사역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아들의 일을 겪으면서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오버랩되었다. 나와 남편이 부모이지만 아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그 순간 아들이 감당할 몫이었다.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중에 10개월 동안 품고 있던 생명이 탯줄에서 분리되는 순간 이미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다. 아들의 무릎 연골이 낯선 의사에 의해 날카로운 메스로 절개되었다. 아들이 수술대 위에 올라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외에 없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나무 위에서 아버지께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그 순간, 예수님의 고독과 외로움의 무게감을 감히 가늠해 본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철저하게 외면하셔야만 했을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하나님의 냉혹한 버림과 그것을 철저하게 순종하신 주님의 심정을 감히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철저한 분리와 단절의 순간이 없었다면 인류 구원의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과 단절이 있었기에 인류 역사는 달라졌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고독 가운데 홀로 오롯이 십자가를 감당하셔야만 하셨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무게에 내 죗값도 추가되었다. 아니, 추가가 아니라 온전히 내 죗값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 모두의 죗값이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에 나도 철저히 못 박혔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타인이 되신 순간이 있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그 순간이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철저히 타인이 된 순간이었다. 아니, 이미 구원 성취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그 과정도 예수님은 이미 혼자였다. 십자가에 달려 온갖 조롱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우리는 때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간과하는 듯하다. 십자가상에 달리신 독생자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의 눈앞에서 아들이 죽어가는데 그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아버지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으신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성부 하나님의 몫이 있었고 성자 예수님의 몫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만 짊어지실 수 있는 무게였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이며 영역이다.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조차도 예수님을 외면하셨고 하나님께서도 그 위치에서 감당하실 몫이었다. 독생자의 죽음보다 인류 구원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성취된 순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철저히 타인이 되는 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열방을 향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셔야만 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예수님의 몫을 홀로 감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보다 강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의 극치를 완성하셨다.
이제 곧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는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영광과 권세를 깊이 경험하길 소망한다. 모든 상황과 환경을 덮을 만한 압도적인 은혜가 임하시길 갈망한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