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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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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목사] 통합예배 ABC

관점의 변화를 요구하는 예배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원로목사)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고향에 돌아오면 생각나는 마을 어른들,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달라스에 돌아오면 생각나는 어른들과 친구, 후배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고향 마을 교회 같은 신앙 공동체가 과연 한국에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요? 과연 교회마다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동체의 수가 얼마가 되든, 함께 하는 교회 식구들은 어떤 인격적 관계를 맺어가고 있도록 교회가 수고하고 있는가요? 함께 모이는 소공동체는 얼마나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요? 이렇게 따듯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 형성을 위해 목회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요?

한국교회는 미주 이민교회와 같은 언어 장벽과 같은 어려움은 없지만, 어휘 사용에 장벽이 큰 걸 보았습니다. 같은 한국말인데도 어른들이 쓰는 말투와 아이들의 그것이 매우 다르다는 거지요. 아이들의 대화 내용을 보면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의 ‘은어’ 수준이더군요. 아마 미국 주류 사회에도 거의 같은 수준의 단절이 세대 간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세대 간의 소통에 큰 벽이 있다는 거지요. 이렇게 서로 다른 차이를 놓고, 서로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머리를 내젓곤 합니다. 대화하기가 어렵다면서 말이지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질 않는 것 같더군요. 이런 면에서 현대 교회가 세워가야 할 따뜻한 공동체를 고민해야 할 겁니다. 모든 세대와 모든 계층이 서로 품을 수 있는 따스한 가족 공동체를 세워갈 때, 비로소 세상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통합예배를 드린다 함은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선은 부모 세대가 물꼬를 트기 위한 주도권을 행사해야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자녀들의 반응은 나중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들의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한 어른 세대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 겁니다. 이걸 위해 부모가 그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신앙의 전통도 포기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경박해 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찬양도 분위기도 모두 내가 그동안 익숙했던 것과는 멀기에 예배를 드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내가 그동안 익숙했던 예배의 형식이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는 내게 익숙했던 형식이나 분위기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거룩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과 분위기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예배의 핵심은 영과 진리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과하티케 부족의 예배당은 우리의 예배 처소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나무를 쪼개 엮어 만든 벽과 대나무 잎을 엮어 만든 지붕은 오 년 정도만 지나면 다시 새로 갈아야 합니다. 흙바닥에 코코넛 잎을 엮어 만든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긴 통나무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아서 예배 드릴 때, 엄마 젖 물고 있는 아이, 교회 건물 벽에 걸려있는 망태기 안에 잠들어 있는 아이, 엄마 옆에 졸망졸망 앉아있는 아이들, 조금 컸다고 동생들 돌보는 십대 아이들, 청년, 장년, 노인들 모두 함께 예배 드리는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특이한 건, 각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주인 옆에 엎드려 있거나,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러다가 서로 으르렁 거리면, 옆에 있던 누군가의 손에 맞아 깨갱거리고 도망갔다가 다시금 슬그머니 주인 옆에 자리잡는 답니다. 이들은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아무도 그들의 예배를 경건하지 않다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 모습이 경건한 예배인 거지요. 그들은 그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교회의 예배 인도자들로 성장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현재 나눔교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출범 당시에 그렇게 불편한 표정을 지었던 10대들이 지금 교회 활동의 핵심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어느 교회에서 나눔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통합예배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학 전공을 한 담임목사가 성도들을 설득해서 통합예배를 드리는 주일에 드디어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영문도 모르고 부모에게 이끌려 온 아이들이 예배 때 어떤 태도를 보였겠습니까? 결국에는 설교를 하던 목회자가 설교 때마다 아이들을 지적하고 훈계로 시간을 썼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억지로 끌려와 앉아있는데, 담임목회자가 자기들을 야단치니 아이들은 점차 통합예배를 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얼마되지 않아 통합예배는 중단되었고, 나중에는 그 목회자도 다른 주로 떠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통합예배를 매주 드린다는 게 쉽지 않기에,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별로 한 번 드리는 방식을 취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통합예배가 하나의 교회 행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렇게 해 보려는 이유는 이 예배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통합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사전 작업과 물밑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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