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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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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달랑 이파리 하나”

서정숙사모
시인
달라스문학회회원

오월의 셋째 주말인 오늘은 광야 기후인 달라스에 산다는 걸 실감하는 날씨입니다. 최고 92도에 체감온도는 96도. 최저기온은 57도로 뚝 떨어지고 바람은 남풍 18마일에서 북풍 15마일로 바뀌니 마음 기온까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도록 채비합니다.

‘레드버드 트리’의 밥풀 꽃 지면, ‘브래드포드페어 트리’ 꽃이 면사포 쓴 신부처럼 도시를 단장시키고, 여린 새잎이 붉은 꽃 같은 ‘레드 팁 포티니아’는 작은 흰 꽃들이 무더기로 소담스럽습니다. 보초병처럼 우뚝 서 있는 ‘매그놀리아’ 잎새 사이로 손바닥 크기의 하얀 꽃이 보이면, 유카 종류인 ‘아담스 니들’이 우윳빛 꽃 종을 달랑달랑 매달 채비합니다. 고가도로 양옆에는 안테나를 쭉쭉 빼고 쌩쌩 달리는 차들을 구경하는 빨갛고 노란 유카꽃들이 여름을 알립니다. 본격적으로 졸업식과 여름 방학, 각종 캠프, 또한 여름성경학교가 열리게 되지요. 그리웠던 대면의 시대가 반갑지만, 아직도 코로나로 아프다는 소식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이 ‘수십 년에 걸쳐서 준비한 책을 마무리 못할 것 같은 절박함에 오금이 저리고 막막해, 정신적인 에너지와 창의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때입니다. 이웃이 무자비하게 잘라버린 나무를 보다가 떠오른 짤막한 이야기를 즉시 써서 발표한 글이 『니글의 이파리』입니다. 대형화폭에 사다리까지 준비해서 멋진 나무와 배경을 그리려던 화가는 달랑 이파리 하나만을 그리고 생을 마감합니다. 나무보다 잎에 더 정성을 들였고 따듯한 마음에 이웃들의 자질구레한 일을 돕는 것이 붓을 드는 일보다 더 많았습니다. 차가운 날 이웃에게 의사를 불러다 주고 자신은 독감에 걸려 결국 세상을 뜹니다. 세상에서는 기껏해야 몇몇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되었을 뿐이었고, 잎만 그려진 그의 그림도 사람들은 완전히 잊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된 세계에서 완성된 자기 나무를 본 그는 그것을 선물이라고 확신합니다. 톨킨은 스스로 만들어 낸 이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고 C.S.루이스의 우정과 사랑에 두려움을 떨쳐내고 힘을 얻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달랑 이파리 하나뿐인 인생. 잘 알려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도 생각납니다. 당시 휩쓸던 유행병인 폐렴에 걸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가난한 화가 지망생 존시. 그것도 그녀의 생존 의욕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을 베어먼 노인이 듣습니다. 존시는 폐렴이 심해지자 창문 밖의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거로 생각합니다.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밤이 지나고 아직도 달려있는 잎새, 그다음 날도 붙어있는 잎을 보며 존시는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밤 마지막 잎이 떨어지자 노인이 밤새도록 폭풍우를 맞으며 벽에 담쟁이 잎 하나를 그립니다. 결국 그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림은 걸작이 되어 노인 화가의 호언장담이 실현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 젊은 생명을 살린 희생.
‘하나의 잎’이었습니다.

이파리 하나라도 제대로 그린 게 있는지 제 삶을 돌아봅니다.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게 하시느냐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은 이 땅에서 주님이 은혜로 충전해 주셨기에 살아 온 세월입니다. 또 신문과의 정기적 인연이 시작된 지 10여 년.
우연인지 필연인지, 결국은 그분과 함께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5월 말부터 KTN에서 TCN으로 글 밭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TCN에 글쓰기는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목사님, 교수님 등 필진이 쟁쟁한데 ‘노목사, 노박사, 노교수, 노젊음’ 게다가 전문 글쟁이도 아닌데, ‘오노(FIVE NO)’인 여자에게 TCN에서 글을 쓰겠느냐고 묻게 하셨을까? KTN의 문화산책에서는 “내 작은 둥지” 이야기로 어쭙잖은 글이지만 나름대로 글 틀이 잡혔는데 옮긴다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은 무엇을 어떻게 쓰기를 원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일과 영성』에서 팀 켈러 목사님은 “주님의 부르심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선한 수고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하나가 영원무궁한 가치를 갖는다. 그게 바로 기독교 신앙이 주는 약속이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잎 하나’를 그리듯 쓰려고 합니다. 첫 발짝 떼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한 마음은 동시를 지을 때 석간수를 긷던 마음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받으시는 그분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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